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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08:43

100 years - Five For Fighting


15살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아쉽게도 한국인에게 15살 시절은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정표를 찾는 것, 미래의 나,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름다운 피아노와 목소리, 그리고 좋은 가사가 어우러져 있다.

자신과의 대화를 갖는 시간을 더 많이 나누자.  그리고 원하는 미래의 나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상처 많던 과거의 나를 만나 화해하고 위로해 주자.  지금의 나를, 나의 삶을 즐기기 위해....


I'm 15 for a moment

한때 15살이었지
Caught in between 10 and 20

10살과 20 사이에서
And I'm just dreaming

그저 꿈꾸고 있었지
Counting the ways to where you are

네가 있는 곳을 향할 방법을 생각하며
I'm 22 for a moment

한때 22살이었지
She feels better than ever

그녀는 기분이 최고였어
And we're on fire

그리고 우린 흥분해 있었지
Making our way back from Mars

화성에서 돌아오면서 
15 there's still time for you

15, 너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Time to buy and time to lose

뭔가를 얻고잃어버리기에
15, there's never a wish better than this

15살이 되는 더할 나위 없는 소원이야
When you only got 100 years to live

네가 만약 100살까지밖에 없다면
I'm 33 for a moment

한때 33살이었지
Still the man, but you see I'm a they

여전히 사람이었지, 하지만 사람들로 볼거야
A kid on the way

같이 가는 아이와
A family on my mind

가족이 있으니까
I'm 45 for a moment

한때 45살이었지
The sea is high

바다는 한창이었고
And I'm heading into a crisis

위험한 고비를 향해 가고 있었지
Chasing the years of my life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15 there's still time for you

15, 너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Time to buy, Time to lose yourself

뭔가를 얻고
Within a morning star

샛별을 보는 정신이 팔릴 만한.

15 I'm all right with you

15살은 정말 좋은 시간이야.
15, there's never a wish better than this

15살이 되는  더할 나위 없는 소원이야
When you only got 100 years to live
네가 만약 100살까지밖에 없다면

Half time goes by

절반이 지나갔어
Suddenly you're wise

갑자기 눈치채겠지
Another blink of an eye

한번의 눈이 깜빡이면서
67 is gone

67살도 지나갔다고
The sun is getting high

태양은 점점 높아지고
We're moving on...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고.. 
I'm 99 for a moment

한때 99살이었지
Dying for just another moment

다음 순간을 지내기 위해서 죽어가고 있었어
And I'm just dreaming

그리고 그저 꿈꾸고 있었지
Counting the ways to where you are
네가 있는 곳을 향할 방법을 생각하며

15 there's still time for you

15,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어
22 I feel her too

22살에 나도 그녀를 느꼈지
33 you're on your way

33살에 너의 길을 가고 있지
Every day's a new day...

나날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면서... 
15 there's still time for you

15, 너에겐 아직 시간이 있어
Time to buy and time to choose

무언가를 얻고, 선택할 만한
Hey 15, there's never a wish better than this

이봐 15, 만약 네가 100살까지 산다면
When you only got 100 years to live

지금이 최고의 시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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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22 08:37

SBS에서 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항상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되면 가끔 보게된다.
재미있는 점은 가끔 보는것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 (내가 보기에) 문제의 근원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아이는 부모의 문제가 아이를 통해서 표출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깨끗한 도화지, 그것도 예쁘고 밝은 색의 도화지다.   그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다.

  1. 부모가 대신해서 하나하나 그려준다.
   - 부모의 꿈을 위한 그럴싸한, 그러나 자신의 욕구는 억누르는 모범생이 된다. 
  2. 부모가 마구 그려 버린다.
   - 부부싸움을 하고 욕을 하고, TV만 보면서 아이들은 잘하기를 바란다.
  3. 아이가 스스로 그릴 수 있도록 가이드해준다.
   - 명령하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좋은 모습을 일상에서 보여준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는 대부분 2의 케이스에서 3의 케이스로 넘어간다.
부모가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실천은 쉽지 않을수 있지만.)
그저 아이와 더 많이 놀아주는 것, 아이들의 행동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진솔하게 물어보는 것,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어 보는 것.

어느것 하나도 사실은 비싼 장비를 구매할 필요도, 특수한 학원을 보낼 필요도 없다. 그저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의 특성을 찾으며, 그것을 펼칠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격려해주고, 모범을 보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방송 초반에 부모님을 인터뷰하면 이런다.
"아이고~~ 우리 애는요.. 이러구 저러구.. 통제도 안되고.. 무작정 떼쓰고...."

가끔 CEO나 임원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원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직원은 나만 없으면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월급이나 올려달라고 그러지..."


리더가 할 첫번째 일?
우리 직원이 달라지기를 원하는 만큼 자신의 소통 방식, 행동 방식, 감정 표출 방식, 직원에 대한 관심, 직원의 재능 발견등등에 대한 점수를 매겨 보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무기명으로 직원들에게 설문을 돌려 보아도 좋다.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TQA (Team Quality Assessment, 조직 역량 평가서)다.

프로그램의 결말을 보면 부모도 아이도 너무 행복하다.
부모가 바뀌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제멋대로 행동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할 수 없다.  변화된 아이들의 표정이 더 밝은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우리 직원이 달라졌어요"의 결말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가 스스로 잘 코칭을 한다면..

비즈니스 코치, 피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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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21 23:14
SNOW.OR.KR에 방문해 보세요.

드디어 한국에서 한국어로 해외 유명대학의 강의를 접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헌으로 만들어진  사이트 SNOW,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 성장에 큰 도움이 될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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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21 18:08

우연히 검색하다가 만났는데.. 와우~ 
장윤정만큼이나 잘 부르고 나름의 맛이 녹아 있는 훌륭한 가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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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20 21:36
역시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것을 재확인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BEN과 Bill은 연사로, 다른 많은 관련된 분들은 이미 다른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 신선한 '퍼뜨릴 가치가 있는 삶과 컨텐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숙명여자대학교는 처음 가봤는데 아주 멋졌다.  인혁님의 말씀에 의하면 강의실이 라운지처럼 되어 있는 곳도 있다고 하니 한국 대학의 시설도 많이 좋아졌나보다.

취업과 스펙에 목숨(?) 걸어야 하는 20대에게 좋은 자극이 되는 열정과 도전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무엇이든 미치도록 좋은 것이 있으면 팟캐스트로 널리 알리세요.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세요.
일단 저지르세요. (Doing First)

너무 뻔히 알고 있는 즐거운 삶의 조건이겠지만 연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www.tedxmyeongdong.com
www.tedxsookmyung.or.kr
www.snow.or.kr

쩡, 혜경님 사진, 자연스럽기는 한데 눈은 감긴채로.. ㅋㅋㅋ


숙대입구역은 자주 갔지만 숙대는 처음



100주년 기념관 내부


그냥 찍어봤다.   멋있던데 사진을 찍고 보니 실제만큼은 아니다.

발표때 찍으면 실례기도 하고 내용에 집중하고 싶어 사전에 한컷만.

김밥과 귤, 그리고 컵을 준비해 주는 센스!!
세계 석학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스노우(www.snow.or.kr), 앞으로 많은 좋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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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13 13:23
아래 그림을 보면 무엇이 상상되시나요? 
스팟 백과사전(이영민 저)에 있는 내용을 보고 재미있어서 아이팟으로 그려서 올려봅니다.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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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11 18:52

마음속에 가지고만 있었던 것을 쓰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어 써봅니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3학년인 김예슬 학생이 자퇴와 함께 대자보를 써붙였네요.
(아래에 붙여 보겠습니다.)

저는 고3때 소위 말하는 고3병을 앓았(??)습니다.  책상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깼는데 다시 꿈이고 또 깼는데 다시 꿈인 적도 있었고, 분명히 누군가 불렀는데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는 경험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심신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이죠.

당시 학력고사 마지막 전(前) 세대였던 나는 전기(4년제), 후기(4년제)를 모두 떨어지고 전문대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재수'를 생각했고 (원래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아무생각 없이 '재수'는 없다!! 고 이미 선언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전문대를 다니고 졸업할 때가 되어 빨리 돈을 벌면서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주위 친구들 (남자 복학생) 절반 정도가 이미 '편입'을 위해 맹렬히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학교는 잘 나오지 않았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하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또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 역시 학교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문대를 다니고 있어 마음속에 컴플렉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생활을 했고 좋은 교수님도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학생들이 컨닝 (정확히는 Cheating)을 한다는 것, 시험이 끝나고 나면 도서관이 텅텅 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은 편입이라는게 있어서 준비해요.."라고 지나가는 말로 부모님께 이야기 했더니 부모님은 4년제 대학에 가는거라면 좋은게 아니냐.. 라고 (나에게 부담주기 싫으셔서) 아쉬움을 내비치셨습니다.
사정이 그러해서 "그럼 한번 시험이라도 볼께요."라고 한후 두달여를 준비해서 몇곳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편입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군대 제대 직전부터 영어공부를 목숨걸고 했던 터에 외국어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서울대 합격보다도 기뻤습니다. (외국어를 워낙 좋아해서..)

부푼 꿈을 가지고 대학에 갔습니다.  뭐 .. 외대 캠퍼스가 작다는 건 워낙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외에 실망할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물론 제가 본 단편만 그럴 수 있습니다.)
(내 생각에) 외대쯤의 수준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컨닝을 하고 있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도서관은 시험직전에는 미어터지지만 시험끝나면 텅~ 빈다.   무역학과 수업이 영어로만 진행할까봐 긴장했는데 전공수업중 영어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교수님은 영어를 잘하시는데 학생들이 몇년전에 한국어로 해달라고 했단다.   '한국과 세계'라는 영어 특강을 신청했는데 솔직히 한국인 교수님의 영어 발음도 엉망이었을 뿐 아니라 중반 넘어가면서부터는 아예 한국어로 했다.  도서관에 장서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것도 오래되거나 안봐서 먼지만 쌓여있다.........

그런데도 IMF시절을 대학에서 보낸 나에게 등록금은 비쌌습니다.
물론 학생회장을 비롯해서 학생들이 적잖이 데모를 하기도 했고, 총장비리 사건으로 더더욱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편입한 사람은 원래부터 그 학교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만의 자격지심일 수 있지만) 조용히 다니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비겁함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김예슬 학생의 대자보를 보며 그 때의 내 생각이 겹쳐져서 다음의 글을 써봅니다.
(현재 대학생 여러분께...)  제가 잘난척하는 것 같이 비춰진다면 용서해 주세요.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다양한 학과, 학부의 수업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편입한 이후에 관심이 있었던 영어, 중국어, 일본어, 심지어 스페인어까지 수강을 했습니다.  학점이 넘치고 시간이 안맞아서 한시간 반만 청강하게 해달라고 원어민 교수에게 조르기도 했습니다.
제게 있어 대학은 말그대로 '학문적 소양을 넓히는 곳' 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별로 유명한, 내공있는 교수님의 얼굴을 매주 보는 것 만으로도 대학이라는 것에 의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도서관의 장서를 얼마나 보셨습니까?  저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장서를 둘러보았습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했지요.)  그리고 항상 두권의 책을 빌려서 한시간 걸리는 통학길에 읽었습니다.  외대 도서관이 좁기는 좁더군요.. 지금은 좋아졌겠지만..

여러분은 수업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들었습니까?   저는 재미없고 느릿느릿한 교수님의 강의가 있을때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영어로 바꾸는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내가 배운 전공은 최소한 영어로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된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학교 부대시설을 최대한 이용하십니까?   저는 왜소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학교 헬스센터를 찾아다니고 (참 지금 생각하면 돈 뽑아먹으려는 노력이었다... 싶기도 합니다만..)  랩실에서 며칠을 끝날때까지 있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학비를 벌기위해 과외도 했지만 노가다, 이삿짐센터, 드라마 엑스트라, 꽃배달(용산 미군기지에서), 휴학하고 일본에서 요리, 설겆이 등등 많은 일을 해봤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가능하게 해준것이지 대학이 해준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신분을 입증해주는 대학생이라는 것은 대학이 제공해 주지요.(뭐 맘에 드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하다보니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청강 때문에 혼자 밥먹어야 하는 일도 많았고, 저녁에 당구나 PC방 갈 수도 없었습니다. (갈 돈도 별로 없었습니다만 ㅋㅋ)

굳이 이렇게까지 나름의 잘난척을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학교에 입학해서 학교가 주는 것을 최대한 체험해보고, 도서관을 다 뒤져보고, 여러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보고, 질문하고, 필요하면 비평하고, 모르는 것 계속 쫓아다니며 물어보고, 필요하면 대학이 못주는 경험을 하고, .... 이렇게 할만큼 하고도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면 그때 정당히 항의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돌맞을 소리인가요?)

등록금이 정당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봐도 너무 비쌉니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수준에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 알고, 대학생으로서의 최선은 다했는지를 반성한 다음에 지.대.루. 항의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이런 대학생활을 했으니 모든 학생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든, 중퇴를 하든, 방통대를 가든, MIT 공짜 온라인 과정을 수료하든, 그냥 불평만 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보고, 맛을 본후에 주위를 탓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김예슬 학생의 용기와 대자보의 글에 격려와 감사를 보냅니다. 이정도의 생각과 용기를 가진 분이라면 분명히 의미있는 삶을 찾을 것입니다.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충분히 길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의 열정과 능력을 믿습니다. 화이팅!




아래 글은 프레시안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311153459

"닭장 속 닭은 싫다"…'자발적 퇴교'! 당신의 선택은?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졸업장 장사' 대학 거부는 계속될 것

기사입력 2010-03-11 오후 4: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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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대자보! 10일, 대학생 김예슬 씨는 다니던 대학에서 '자발적 퇴교'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혼자 조용히 자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장문의 대자보를 다니던 대학에 붙였습니다. 전지 3장의 글에는 끊임없는 불안과 경쟁만을 조장하는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 담겼습니다. (☞관련 기사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그는 대자보에서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대기업 하청 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고 외쳤습니다.

김예슬 씨는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 때문에 방황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세대의 솔직한 심정을 적은 그 대자보의 내용은 많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용기에 큰 격려와 감사를 보냅니다.

바쁜 외출 시간에 쫓기면서 이렇게 다시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개인적인 사정도 한 몫 합니다. 이 '자퇴 대자보'를 읽어보니, 구구절절 내가 둘째 아이와 벌인 논쟁들이 거의 담겨져 있더군요.

▲ "대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알만 낳는 닭이 아니다. 나는 알 낳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 ⓒ프레시안

둘째 아이가 지난 여름, 세 번째 자퇴를 선언했습니다.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을 거쳐 세 번째입니다. 그 애도 김예슬 씨처럼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다녔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자퇴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주장은 "대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알만 낳는 닭이 아니다. 나는 알 낳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가장 큰 이유는 '경쟁에 대한 환멸'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대학 등록금을 비롯한 대학 교육 과정, 대학 운영 방식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습니다. 무엇보다 '경쟁하기 싫다'는 그 때 그 아이의 주장을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부모이기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대학 졸업장만 따라"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하다못해 그 애의 20대 친구들까지도 그랬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길 중에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부모인 나는 둘째 아이의 자퇴 선언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는 내 아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세상을 살기를 바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애가 처음으로 자퇴를 선언한 15살부터, 지난 10년의 시간은 서로에게 많은 고통과 갈등,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의 외로움이 뒤범벅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세 번의 자퇴 선언을 통해 나름의 주체성과 창의력, 열정과 문화적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인생은 공평한지라 그에 따르는 어려운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의 요구를 애처롭게 여긴 둘째 아이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이번에 자퇴 선언이 나온 그 대학교에 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3월 2일 새 학기를 시작해 이제 두 번째 주를 맞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김예슬 씨는 대자보에서 이 선택으로 "길을 잃고 상처받을 것"이며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용기 있는 고백입니다. 모두들 닭장에 갇힌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의 의지와 용기는 한국 사회에 샘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퇴 대자보에 많은 학생이 관심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카메라를 들고 등교한 둘째 아이도 아마 그 대자보가 붙은 장소에 들를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둘째 아이의 자퇴 선언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 제 한계를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김예슬 씨를 포함해 이를 받아들인 그의 부모님, 대학 자퇴를 꿈꾸는 또 다른 아이들, 자퇴를 둘러싸고 부모와 갈등을 겪는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행운과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자퇴가 '개인의 심각한 선택'이 아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될 날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다짐해봅니다.
 

/김명신 교육운동가·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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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11 14:52
지난주 손일선 회장님의 초대로 소금동굴에 다녀왔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심코치님의 차를타러 잠실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몰랐지만 지하철은 5시반에 운행을 시작하더군요. 그래도 다행히 잠실에서 정확히 6시에 도착!! 어?? 미리 오시기로 했던 두분 커치님이 아직 안오셨다는 겁니다.

사연인즉, A코치님이 B코치님을 태워 잠실로 오시기로 했는데 A 코치님이 늦잠을 주무셨고 결국 두분 모두 늦으시게 된 것입니다.

7시가 다되어 오실텐데 그럼 아마 서울 빠져나가기가 어렵고 결국 한시간에 한번오는 배를 탈수없게 되고 오픈 기념식을 못볼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평소 성격상 이미 늦었으니 먼저 출발하자는 쪽이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낀(?) B코치님께는 미안했지만 말이지요. (요게 제입장에서의 첫번째 깨끗한 대화였죠^^).

그러나 심코치님은 "늦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입장을 명확히 해쥬셨습니다. (심코치님의 깨끗한 대화)
결국 한시간여를 기다려 출발했지만 교통상황은 좋았고 무사히 제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오오~~~

심코치님, 나, A코치님 모두 깨끗한 대화를 해서 얻은 큰 유익이 있었습니다.
나 : 난 새벽에 잠안자고 6시에 왔는데 지각한 사람 기다리다 행사에 늦을순 없다. 하지만 할말을 했고 합의를 봤기에 남은 감정이 없었다
A코치님 : 늦었지만 충분히 상호협의가 있어서 미안한 마음을 바로 털수 있었다. 사실 나와 심코치님이 무작정 "괜찮다"고만 했으면 종일 미안했을수도 있다.
심코치님 : 운전하며 시간의 압박은 있었지만 모두 갈수있어 좋았다.

결국 모두 자신의 내면의 대화를 서로에게 터놓고 나니 홀가분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상처받을까?" "내 이미지 손상되는거 아냐?"라는 막연한 눈치를 버리고 직접 대화를 피했다면??

아마도 나는  A코치님이 얼마나 미안해하고 염치있게(!) 행동하는지를 보며 불쾌해 할 수 있고, A 코치님도 종일 미안한 생각이 있으셨을 것이며 전반적으로는 모두 어색한 여행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깨끗한 대화를 선택했고 맛있는 샌드위치, 커피, 과자를 먹으며 위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잠도 자고 (운전하신 심코치님께는 죄송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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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10 18:16
삼성전자,
한때 몸담고 있던 회사의 경쟁사(?)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수준과 한국 IT산업의 전반적 경쟁력을 높여주는 좋은 회사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있었기에 다른 IT 회사들도 더 분발을 했고 특히 국내 IT 기업이 더 노력을 했다고 봅니다.)

정치와 권력에 관련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프레시안에서 본 기사를 읽으며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불매운동', 하자니 그렇고 안하자니 그런... 그리고 어느것이 더 도움이 될지 참으로 복잡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래의 글도 읽고 다른 것도 알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겠다 싶어 기사를 퍼왔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09154532&section=02)

한가지 생각하는 것은, 누구든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은 몸이 편할지언정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는 아닙니다.
또하나는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 또는 일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점점 커뮤니케이션이 개방되어가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들일 수록 '좋은 대안'을 만들어 가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삼성은 나쁘다. 어디는 괜찮다.  이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데 과연 나는 (크든 작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볼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이런 케이티 (네가지 질문의 저자)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나의 일, 남의 일, 신의 일이 있습니다"
남의 일과 신의 일을 두고 고민하면서 인생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해야할 '나의 일'이 불매운동일까?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이젠 '삼성의 어둠'을 얘기해야 할 때

기사입력 2010-03-10 오전 10:27:15

삼성이 비판적 공론장에서 금칙어가 된 지 오래다. 진보 언론조차 삼성에 비판적인 글을 싣기 부담스러워 한다. 얼마 전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에 김상봉 교수의 칼럼이 실리지 않으면서 불거진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주요 언론은 삼성에 비판적인 책은 광고조차 내주지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직 삼성전자 부장이 쓴 책 <고르디우스의 매듭>(김병윤 지음, 두레스경영연구소 펴냄)등 삼성에 비판적인 책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았다. 누구나 돈만 내면 광고 지면을 빌릴 수 있다는, 시장 원리의 기본이 무너진 사례다.

시장 경제를 내세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뭘까.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주눅이 들어 있을 뿐이다. 광고를 못 받을까봐, 아니면 소송 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이런 공포에는 근거가 있다. 삼성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광고주다. 규모가 영세한 진보 언론이 오히려 삼성 광고에 의존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또 유죄 판결이 났을 사건이, 피고인이 삼성 또는 이건희 전 회장인 경우에는 무죄 판결이 났던 사례도 많이 봤다. 이런 삼성과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누구에게도 두려운 일이다.

가까운 일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의 경우다. 일본 언론과 지식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토요타 모델을 칭찬하기만 했다. 미국의 포드식 경영과 대비되는 토요타식 경영은, 그래서 우리에게도 모범 사례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토요타에 관한 진실 가운데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다.

최대 광고주인 토요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할 수 있는 언론이 일본에는 없었던 게다. 일본의 한 언론이 낸 책 <토요타의 어둠(원제: 토요타의 흑막)>(MyNewsJapan 지음, JPNews 옮김, 창해 펴냄)이 일본 주요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요타의 어둠> 저자는 책 말미에서 토요타 등 대기업을 대하는 일본 사회의 태도를 태평양 전쟁 당시에 비유했다. 당시 일본 군부는 누가 봐도 패배가 뻔한 전쟁으로 국민을 내몰았지만, 일본 지식인은 객관적인 세계 정세에 침묵했다. 대다수 국민은 전진과 승리만 외치는 군부의 구호를 그대로 믿었다. 다수 국민이 군부가 걸어놓은 집단 최면에서 벗어난 것은 패전 이후였다.

이런 비유는 삼성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국민이 몇 개의 승전 사례 앞에서 군부를 비판할 엄두를 내지 못 했듯, 많은 한국인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 일부 산업에서 삼성이 거둔 성취만 바라볼 뿐 삼성의 어둠에는 눈을 감는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태평양 전쟁의 패배가 일본 군부만의 패배가 아니었던 것처럼 '삼성의 어둠'이 낳을 비극 역시 삼성만의 문제가 아닐 게다. 한국 사회 전체의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이건희 전 회장이 사면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끌어온 삼성 비리 논란이 일단락 됐지만, 여전히 우리가 삼성을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삼성의 어둠'은 고스란히 '한국의 어둠'이다. '삼성의 어둠'에 빛을 드리울 방법은 과연 없을까.

다들 막막해 한다. 주요 언론은 입을 닫고, 사법부는 면죄부를 줬으며, 그나마 나온 일부 유죄 판결 역시 대통령이 금세 사면해 줬다. 이런 상황에서 무력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그래도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이들이 있다.

전남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상봉 교수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가 일단 제안하는 것은 삼성 불매 운동이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의사 표현이라는 것.

<프레시안>은 우선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하는 김 교수의 글을 싣는다. 이어서 삼성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이다. 문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삼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보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독후감일 수도 있고, 무노조 경영, 협력 업체를 쥐어짜는 거래 방식, 임직원을 혹사하는 기업 문화, 창의적 시도보다 성공사례 답습에 급급한 경영 전략, 합리적 절차 대신 인맥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가는 관행,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 총수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한 황제식 경영, 옛 비서실로 대표되는 총수 친위 조직의 전횡 등 삼성의 다른 문제점에 관한 글 역시 환영이다.

삼성의 잘못을 변호하는 글, 또는 삼성이 거둔 성취에 관한 글 역시 마찬가지다. 김상봉 교수의 글을 비롯한 앞으로 이 공간에 실릴 글에 대한 반론일 수도 있다.글을 보낼 주소는 mendrami@pressian.com이다. <편집자
>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판매 부수가 10만 부를 넘길 때가 머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삼성 내부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런데 그 폭로의 대상인 삼성과 이건희 일가로부터 아직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허황된 거짓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김 변호사의 책을 읽고 단지 삼성의 비리에만 분노한다면, 아직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삼성 말고도 다른 모든 기업이 비리를 저지를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 단순히 불법과 비리를 일삼아 저지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집단이 지금 한국을, 아니 바로 우리들을 보이지 않게 지배한다는 데 있다.

외환 위기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에 한국 사회는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에 상응하여 사회적으로도 자본 또는 기업이 한국 사회의 지배 권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그토록 노예적으로 돈을 숭배하는데 어떻게 자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것은 그런 현실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다지 정확한 말도 아니었다. 그가 좀 더 정직했더라면 시장이 아니라 삼성이 지배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은 시장이 아니라 자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을 가진 사람이 우리를 지배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도 남을 지배할 수 없다. 모든 권력은 불평등하게 집중된 힘에서 생겨난다. 자본 권력 역시 자본의 불균등한 소유로부터 생겨나고 빈부의 격차가 큰 만큼 더 커진다. 삼성의 자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불어나 이제 다른 모든 기업을 능가하는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우리 사회는 속속들이 기업화되어 대통령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를 자처할 정도로 국가 전체가 가히 기업 국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기업이면 일자리를 만들어 주니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기업이 주는 일자리는 인간의 삶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을 도구 삼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 던지는 미끼요 올가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기업은 가장 독재적인 조직이다. 종업원들이 선거로 사장을 뽑는 재벌 기업을 보았는가? 국가가 기업에 동화되고 기업화된다는 것은 국가가 독재 국가가 된다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말이다. 기업 국가는 기업 독재 국가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5년에 한 번씩 국가의 CEO를 선출한다. 하지만 그는 유감스럽게도 바지사장일 뿐이다.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장님'은 따로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자기 혼자만을 위한 대통령 특별 사면을 받아내고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만찬장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헤드테이블에 같이 앉은 모습이야말로 바로 그런 권력 구조의 극명한 상징이다. 선출된 권력 이면에 선출되지 않은 자본 권력이 군림할 때, 나라의 민주주의는 근본에서부터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왜 삼성만 갖고 그러는가? 다른 재벌 기업들이 아니 다른 중소기업들이 삼성에 비해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물음이다. 그것은 마치 40년 전에 왜 '박정희'만이 문제인가, 모든 군인들이 또는 모든 공화당 정치인들이 다 같이 나쁘지 않은가 하고 묻는 것이 어리석은 물음이었던 것과 같다. 박정희 씨를 제거하고서야 유신독재가 끝날 수 있었고, 전두환 씨를 권좌에서 추방한 뒤에야 비로소 신군부의 독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역시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그 권력에서 추방하지 않고서는 기업독재를 끝낼 수 없다.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 집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프레시안
왜냐하면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의 최고 권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 집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지금 재벌 기업이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군부와 같다면, 삼성은 군부의 실세였던 하나회와 같고, '회장님'은 '각하'와 같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비판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우리는 삼성이 재벌 기업이라서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희 전 회장이 가장 부유한 자본가라는 이유 때문에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무작정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나 시장경제가 타도되어야 할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건희 전 회장이 빌 게이츠 씨 같은 자본가였더라면 우리는 그가 아무리 부자라도 단지 그 때문에 그를 비판할 까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비판하고 더 나아가 이건희 일가를 삼성으로부터 추방하고 삼성을 종국에는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이 단순한 기업 집단도 자본가도 아니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라의 근본인 정의를 파괴하는 독재 권력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기의 분수를 지키면서 나라 경제를 살찌우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한에서 우리 모두는 그런 기업을 사랑하고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그 자본을 이용해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온갖 불법을 일삼아 저지르며, 그것도 모자라 공직자들을 매수하여 국가 기구 전체를 부패에 빠뜨리고 마지막에는 나라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기에 이른다면, 이제 그런 기업, 그런 자본가는 타도되어야 할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삼성의 모든 타락상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기업이 저지르는 불법이 아니라 삼성의 특권적 권력에서 비롯된다. 삼성의 권력이 삼성을 다른 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반사회적인 기업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며 이건희 전 회장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라는 조사들을 우리는 심심찮게 보지만, 과연 이런 경우 사람들은 존경이란 말을 무슨 뜻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일까?

삼성이 얼마나 반사회적인 기업인지 알려면, 주변의 장애인 친구에게 삼성이 장애인 2퍼센트 의무 고용을 얼마나 지키는지 물어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이런 것을 또 어떠한가? 3년 전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물산 소속의 배가 인천대교 건설에 투입되었던 해상 크레인을 끌고 가다 가만히 있는 초대형 유조선을 들이받아 충남 서해안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자 삼성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삼성답게 먼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항해 일지를 조작한 일이었다. 지역 해양청이 충돌 위험을 무선으로 알렸는데도 그런 경고를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그리고 전 국민 수십만 명이 태안 앞바다에서 손으로 기름을 닦고 있을 때, 삼성은 마치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사건 50일이 지난 다음에야 마지못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은 앞으로는 사과하는 시늉을 내면서 뒤로는 배상액을 50억 원으로 제한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도 한 통속이어서 올해 1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의 편을 들어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에 대해 삼성이 이미 공탁해둔 56억여 원 이외에는 더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액수는 삼성이 퇴직한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계좌에 본인도 모르게 넣어 둔 돈 52억보다는 조금 많은 돈이지만, 삼성건설이 지은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의 큰 평수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이다.

삼성전자의 2009년 영업이익이 11조 원에 가까웠던 것을 생각하면 56억 원은 주머니 속의 동전에 불과하다. 그런데 천문학적 비자금을 쌓아두고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대선자금으로, 공직자 뇌물로 쓰면서도, 자기가 책임져야 할 사고에 대해 배상할 돈은 없는 기업이 삼성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삼성을 감정적으로 혐오하게 만들지만,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모든 독재 권력이 그렇듯이 삼성은 국가 권력과 법질서의 통제 밖에 있다. 삼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공직자를 매수하고, 이것 역시 불가능할 경우에는 대놓고 법을 무시한다. 분식회계 장부가 법원에 넘어가자 법원 직원을 매수하여 서류를 빼돌려 불태우는가 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확보한 자료를 삼성직원이 가로채 도망가면서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몇 천 만 원 벌금으로 모든 불법을 덮어 버린다.

하지만 삼성이 일삼아 불법을 저지른다 해서 우리가 삼성을 일종의 조직 폭력 집단으로 규정한다면 사태를 오해하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그것이 탈법과 비리를 일삼아 저지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구 자체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삼고,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모든 공공적 기능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 많은 나라들이 이념의 차이에 관계없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적인 사회 보장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려 할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기업이 삼성생명이었다. 국가가 다 보장해주면 삼성생명은 보험을 팔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성이 꿈꾸는 세상이란 부자들은 감기만 걸려도 삼성병원 특실에서 황제처럼 대접받고 가난뱅이들은 죽을 병이 걸려도 동네병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앓다 죽는 세상, 부자들은 외국산 수입 생수로 집안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 가난뱅이들은 재벌 기업이 운영하는 비싼 수도 요금을 내지 못해, 화장실과 부엌에 수도가 끊어져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고 빗물을 받아먹어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악몽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더 늦기 전에 삼성을 해체해야 한다. 우리가 박정희, 전두환 씨를 권좌에서 쫒아 내고 군부의 권력을 해체한 뒤에야 비로소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회장님'의 권력을 박탈해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삼성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결코 기업 독재를 끝낼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자식들은 재벌 기업의 머슴으로 종노릇하는 운명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삼성 제품 불매는 자본의 독재, 삼성의 독재를 끝내기 위한 대장정의 첫 걸음이다. 유명무실한 삼성 특검 수사와, 대다수 범죄 행위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려줌으로써 요식 행위에 그친 재판과, 그 재판을 통해 내려진 법의 심판조차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린 최근의 특별 사면을 통해 분명해진 것처럼, 국가기구는 더 이상 삼성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미 삼성에 매수되어버린 국가 기구가 삼성이 온전한 기업이 되도록 만들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회장님의 비서가 회장님의 불법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소망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삼성을 해체하고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소비자뿐이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은 공치사가 아니다. 화폐가 자기 증식 운동을 시작하면 자본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자본은 결코 저 혼자 불어나지는 못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털어 불어나는 것이다. 국가가 없다 하더라도 자본은 자기 증식할 수 있다.

자본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까닭도 본질적으로 보자면 그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와 소비자가 없다면 자본은 절대로 혼자 증식할 수 없으며,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자본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노동자들과 소비자들밖에 없다. 하지만 삼성엔 노동조합이 없다. 삼성이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더 사악한 반사회적 기업이 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안팎으로 아무런 견제가 없는 권력이 어떻게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도 노동조합도 삼성의 불법을 바로잡을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직접 행동뿐이다. 삼성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자기 제품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든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삼성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그날로 삼성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게다가 삼성은 주방용 가전제품부터 안방의 청소기, 사무실의 전화기와 컴퓨터, 가방 속의 노트북과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 그 속의 반도체 그리고 지갑 속의 신용카드, 생명보험자동차보험 등,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이루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삼성제품으로 채운다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우리 모두 삼성의 먹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삼성제품을 거부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버릴 것은 수도 없이 많이 널려 있다.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해약하고 해지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자. 지구 위에 생명체가 등장한 뒤에 모래알처럼 작은 개미들은 영원히 살아남아도 공룡이 멸종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게다가 삼성이란 공룡을 멸종시키기 위해 우리가 엄청난 노고를 쏟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하지 않으면 된다. 삼성 제품을 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는 일은 어려워도 하지 않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하던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은 오직 하나, 마음을 바꾸는 일뿐이다. 우리의 삶을 삭막한 사막으로 만드는 것도, 푸른 초원으로 바꾸는 것도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 그 실상을 깨닫고 삼성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과 삼성의 권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생각하면 이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소비자의 권리라 생각한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삼성은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기업임이 분명하다. 제품의 품질은 물론이고 저녁 시간에 냉장고 수리를 신청했더니 두 시간 반만에 고쳐줄 정도로(<한겨레> 3월 9일자 김선주 칼럼) 완벽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완벽한 서비스의 이면에 그만큼 완벽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통제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도구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무 불편 없이 저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나의 냉장고를 수리하러 온 노동자가 자기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헤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와 소비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윤리이다.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나 개인이 느끼는 만족이 아니라 그 제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전 과정이 얼마나 정의롭고 자연 친화적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이 소비자로서 제품 선택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 불매 운동이란 단순히 외적 억압과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 내면의 탐욕 및 아집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철학자가 삼성 불매 운동의 선두에 나선 까닭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비싸더라도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고 공정 무역 커피구매한다. 아마도 거기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보다 좋은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개인적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려 하는 인간의 선한 의지이다. 그런 선한 의지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해 왔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삼성을 해체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려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한국의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재벌 경제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더불어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나중에 삼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하기 전에 무조건 삼성 제품을 불매함으로써 삼성의 권력을 해체하는 일을 즉시 시작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에 '박정희 타도'가 무조건적인 대의였으며, 전두환 독재 치하에서 그 독재자의 제거가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선결 문제였던 것과 같다. 그렇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삼성 불매를 통해 삼성과 이건희 일가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역사적 과제라고 우리는 믿는다.

어떤 경우이든, 분명한 것은 박정희 씨가 죽었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았듯이 삼성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다른 회사 제품을 쓴다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와 나라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이제 우리, 삼성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자. 그리고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 것이 고상한 인간의 품위와 교양의 징표가 되게 하자.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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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
2010/03/10 10:48
뇌에 관련된 여러 책과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있다.
이 공부가 흥미로운 것은 종종 써먹고 확인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뇌에 관련된 정보를 보면서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닌텐도 두뇌 트레이닝을 하고 여러가지 암기법을 지속 응용하고 있다.
(특히 어릴적에 영단어 옆에 만화를 그려 만화책을 가지고 다녔던 나의 위대한(???) 실천은 뇌 과학적으로도 적절한 방법이었다.)

요즘 제대로 맛을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아침에는 창의력, 오후나 저녁에는 기억력.

이미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아침에는 샤워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데 도움이 많이된다.
우리가 꿈을 꾸고 나서 기억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뇌가 밤사이에 기억 분류작업을 마치고 잠시 개점휴업 비슷한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신에 신선한 자극을 통해 엉뚱하거나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을 하거나 암기를 위해 책을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전날 잠에 들기 전에 꼭 해결하고자 하는 이슈를 마음에 담은 후에 단잠을 자는 것이다. (이 때 편안한 숙면이 중요하다.  미해결 문제 때문에 얼굴까지 찡그리며 잔다면 뇌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몇가지 좋은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강의를 더 재미있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저녁을 적게 먹어야 한다는 과제가 생긴다.

결국???  생활습관의 문제는 창의력과 경쟁력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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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ter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