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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업에 교육, 컨설팅, 코칭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창의력,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멘토링 강의를 합니다. 코치로서는 세계에 기여할 인재를 코칭합니다.
Peter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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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대한 생각.

2010/03/10 18:16 | Posted by PeterHan
삼성전자,
한때 몸담고 있던 회사의 경쟁사(?)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수준과 한국 IT산업의 전반적 경쟁력을 높여주는 좋은 회사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있었기에 다른 IT 회사들도 더 분발을 했고 특히 국내 IT 기업이 더 노력을 했다고 봅니다.)

정치와 권력에 관련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프레시안에서 본 기사를 읽으며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불매운동', 하자니 그렇고 안하자니 그런... 그리고 어느것이 더 도움이 될지 참으로 복잡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래의 글도 읽고 다른 것도 알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겠다 싶어 기사를 퍼왔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09154532&section=02)

한가지 생각하는 것은, 누구든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은 몸이 편할지언정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는 아닙니다.
또하나는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 또는 일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점점 커뮤니케이션이 개방되어가는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들일 수록 '좋은 대안'을 만들어 가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삼성은 나쁘다. 어디는 괜찮다.  이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데 과연 나는 (크든 작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볼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이런 케이티 (네가지 질문의 저자)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나의 일, 남의 일, 신의 일이 있습니다"
남의 일과 신의 일을 두고 고민하면서 인생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해야할 '나의 일'이 불매운동일까?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금 당장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합니다!"

[삼성을 생각한다] 이젠 '삼성의 어둠'을 얘기해야 할 때

기사입력 2010-03-10 오전 10:27:15

삼성이 비판적 공론장에서 금칙어가 된 지 오래다. 진보 언론조차 삼성에 비판적인 글을 싣기 부담스러워 한다. 얼마 전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에 김상봉 교수의 칼럼이 실리지 않으면서 불거진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주요 언론은 삼성에 비판적인 책은 광고조차 내주지 않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직 삼성전자 부장이 쓴 책 <고르디우스의 매듭>(김병윤 지음, 두레스경영연구소 펴냄)등 삼성에 비판적인 책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았다. 누구나 돈만 내면 광고 지면을 빌릴 수 있다는, 시장 원리의 기본이 무너진 사례다.

시장 경제를 내세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긴 이유가 뭘까.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주눅이 들어 있을 뿐이다. 광고를 못 받을까봐, 아니면 소송 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이런 공포에는 근거가 있다. 삼성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광고주다. 규모가 영세한 진보 언론이 오히려 삼성 광고에 의존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또 유죄 판결이 났을 사건이, 피고인이 삼성 또는 이건희 전 회장인 경우에는 무죄 판결이 났던 사례도 많이 봤다. 이런 삼성과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누구에게도 두려운 일이다.

가까운 일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의 경우다. 일본 언론과 지식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토요타 모델을 칭찬하기만 했다. 미국의 포드식 경영과 대비되는 토요타식 경영은, 그래서 우리에게도 모범 사례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토요타에 관한 진실 가운데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다.

최대 광고주인 토요타에 비판적인 보도를 할 수 있는 언론이 일본에는 없었던 게다. 일본의 한 언론이 낸 책 <토요타의 어둠(원제: 토요타의 흑막)>(MyNewsJapan 지음, JPNews 옮김, 창해 펴냄)이 일본 주요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요타의 어둠> 저자는 책 말미에서 토요타 등 대기업을 대하는 일본 사회의 태도를 태평양 전쟁 당시에 비유했다. 당시 일본 군부는 누가 봐도 패배가 뻔한 전쟁으로 국민을 내몰았지만, 일본 지식인은 객관적인 세계 정세에 침묵했다. 대다수 국민은 전진과 승리만 외치는 군부의 구호를 그대로 믿었다. 다수 국민이 군부가 걸어놓은 집단 최면에서 벗어난 것은 패전 이후였다.

이런 비유는 삼성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국민이 몇 개의 승전 사례 앞에서 군부를 비판할 엄두를 내지 못 했듯, 많은 한국인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 일부 산업에서 삼성이 거둔 성취만 바라볼 뿐 삼성의 어둠에는 눈을 감는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태평양 전쟁의 패배가 일본 군부만의 패배가 아니었던 것처럼 '삼성의 어둠'이 낳을 비극 역시 삼성만의 문제가 아닐 게다. 한국 사회 전체의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이건희 전 회장이 사면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끌어온 삼성 비리 논란이 일단락 됐지만, 여전히 우리가 삼성을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삼성의 어둠'은 고스란히 '한국의 어둠'이다. '삼성의 어둠'에 빛을 드리울 방법은 과연 없을까.

다들 막막해 한다. 주요 언론은 입을 닫고, 사법부는 면죄부를 줬으며, 그나마 나온 일부 유죄 판결 역시 대통령이 금세 사면해 줬다. 이런 상황에서 무력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그래도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이들이 있다.

전남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상봉 교수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가 일단 제안하는 것은 삼성 불매 운동이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의사 표현이라는 것.

<프레시안>은 우선 삼성 불매 운동을 제안하는 김 교수의 글을 싣는다. 이어서 삼성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이다. 문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삼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보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독후감일 수도 있고, 무노조 경영, 협력 업체를 쥐어짜는 거래 방식, 임직원을 혹사하는 기업 문화, 창의적 시도보다 성공사례 답습에 급급한 경영 전략, 합리적 절차 대신 인맥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가는 관행,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 총수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한 황제식 경영, 옛 비서실로 대표되는 총수 친위 조직의 전횡 등 삼성의 다른 문제점에 관한 글 역시 환영이다.

삼성의 잘못을 변호하는 글, 또는 삼성이 거둔 성취에 관한 글 역시 마찬가지다. 김상봉 교수의 글을 비롯한 앞으로 이 공간에 실릴 글에 대한 반론일 수도 있다.글을 보낼 주소는 mendrami@pressian.com이다. <편집자
>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판매 부수가 10만 부를 넘길 때가 머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삼성 내부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런데 그 폭로의 대상인 삼성과 이건희 일가로부터 아직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허황된 거짓말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김 변호사의 책을 읽고 단지 삼성의 비리에만 분노한다면, 아직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삼성 말고도 다른 모든 기업이 비리를 저지를 것이다. 문제는 삼성이 단순히 불법과 비리를 일삼아 저지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집단이 지금 한국을, 아니 바로 우리들을 보이지 않게 지배한다는 데 있다.

외환 위기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에 한국 사회는 심각한 변화를 겪었다. 심리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에 상응하여 사회적으로도 자본 또는 기업이 한국 사회의 지배 권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그토록 노예적으로 돈을 숭배하는데 어떻게 자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것은 그런 현실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그다지 정확한 말도 아니었다. 그가 좀 더 정직했더라면 시장이 아니라 삼성이 지배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은 시장이 아니라 자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을 가진 사람이 우리를 지배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무도 남을 지배할 수 없다. 모든 권력은 불평등하게 집중된 힘에서 생겨난다. 자본 권력 역시 자본의 불균등한 소유로부터 생겨나고 빈부의 격차가 큰 만큼 더 커진다. 삼성의 자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불어나 이제 다른 모든 기업을 능가하는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우리 사회는 속속들이 기업화되어 대통령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를 자처할 정도로 국가 전체가 가히 기업 국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기업이면 일자리를 만들어 주니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기업이 주는 일자리는 인간의 삶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을 도구 삼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 던지는 미끼요 올가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기업은 가장 독재적인 조직이다. 종업원들이 선거로 사장을 뽑는 재벌 기업을 보았는가? 국가가 기업에 동화되고 기업화된다는 것은 국가가 독재 국가가 된다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말이다. 기업 국가는 기업 독재 국가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5년에 한 번씩 국가의 CEO를 선출한다. 하지만 그는 유감스럽게도 바지사장일 뿐이다.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장님'은 따로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자기 혼자만을 위한 대통령 특별 사면을 받아내고 동계올림픽 선수단 환영 만찬장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헤드테이블에 같이 앉은 모습이야말로 바로 그런 권력 구조의 극명한 상징이다. 선출된 권력 이면에 선출되지 않은 자본 권력이 군림할 때, 나라의 민주주의는 근본에서부터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왜 삼성만 갖고 그러는가? 다른 재벌 기업들이 아니 다른 중소기업들이 삼성에 비해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물음이다. 그것은 마치 40년 전에 왜 '박정희'만이 문제인가, 모든 군인들이 또는 모든 공화당 정치인들이 다 같이 나쁘지 않은가 하고 묻는 것이 어리석은 물음이었던 것과 같다. 박정희 씨를 제거하고서야 유신독재가 끝날 수 있었고, 전두환 씨를 권좌에서 추방한 뒤에야 비로소 신군부의 독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역시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그 권력에서 추방하지 않고서는 기업독재를 끝낼 수 없다.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 집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프레시안
왜냐하면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의 최고 권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 집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지금 재벌 기업이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군부와 같다면, 삼성은 군부의 실세였던 하나회와 같고, '회장님'은 '각하'와 같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비판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우리는 삼성이 재벌 기업이라서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희 전 회장이 가장 부유한 자본가라는 이유 때문에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무작정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나 시장경제가 타도되어야 할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건희 전 회장이 빌 게이츠 씨 같은 자본가였더라면 우리는 그가 아무리 부자라도 단지 그 때문에 그를 비판할 까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비판하고 더 나아가 이건희 일가를 삼성으로부터 추방하고 삼성을 종국에는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이 단순한 기업 집단도 자본가도 아니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라의 근본인 정의를 파괴하는 독재 권력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기의 분수를 지키면서 나라 경제를 살찌우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한에서 우리 모두는 그런 기업을 사랑하고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그 자본을 이용해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온갖 불법을 일삼아 저지르며, 그것도 모자라 공직자들을 매수하여 국가 기구 전체를 부패에 빠뜨리고 마지막에는 나라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기에 이른다면, 이제 그런 기업, 그런 자본가는 타도되어야 할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삼성의 모든 타락상은 단순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기업이 저지르는 불법이 아니라 삼성의 특권적 권력에서 비롯된다. 삼성의 권력이 삼성을 다른 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반사회적인 기업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며 이건희 전 회장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라는 조사들을 우리는 심심찮게 보지만, 과연 이런 경우 사람들은 존경이란 말을 무슨 뜻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일까?

삼성이 얼마나 반사회적인 기업인지 알려면, 주변의 장애인 친구에게 삼성이 장애인 2퍼센트 의무 고용을 얼마나 지키는지 물어보면 될 것이다. 아니면 이런 것을 또 어떠한가? 3년 전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물산 소속의 배가 인천대교 건설에 투입되었던 해상 크레인을 끌고 가다 가만히 있는 초대형 유조선을 들이받아 충남 서해안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자 삼성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삼성답게 먼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항해 일지를 조작한 일이었다. 지역 해양청이 충돌 위험을 무선으로 알렸는데도 그런 경고를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그리고 전 국민 수십만 명이 태안 앞바다에서 손으로 기름을 닦고 있을 때, 삼성은 마치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사건 50일이 지난 다음에야 마지못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은 앞으로는 사과하는 시늉을 내면서 뒤로는 배상액을 50억 원으로 제한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도 한 통속이어서 올해 1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의 편을 들어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에 대해 삼성이 이미 공탁해둔 56억여 원 이외에는 더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액수는 삼성이 퇴직한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계좌에 본인도 모르게 넣어 둔 돈 52억보다는 조금 많은 돈이지만, 삼성건설이 지은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의 큰 평수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이다.

삼성전자의 2009년 영업이익이 11조 원에 가까웠던 것을 생각하면 56억 원은 주머니 속의 동전에 불과하다. 그런데 천문학적 비자금을 쌓아두고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대선자금으로, 공직자 뇌물로 쓰면서도, 자기가 책임져야 할 사고에 대해 배상할 돈은 없는 기업이 삼성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삼성을 감정적으로 혐오하게 만들지만,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모든 독재 권력이 그렇듯이 삼성은 국가 권력과 법질서의 통제 밖에 있다. 삼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공직자를 매수하고, 이것 역시 불가능할 경우에는 대놓고 법을 무시한다. 분식회계 장부가 법원에 넘어가자 법원 직원을 매수하여 서류를 빼돌려 불태우는가 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확보한 자료를 삼성직원이 가로채 도망가면서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몇 천 만 원 벌금으로 모든 불법을 덮어 버린다.

하지만 삼성이 일삼아 불법을 저지른다 해서 우리가 삼성을 일종의 조직 폭력 집단으로 규정한다면 사태를 오해하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는 그것이 탈법과 비리를 일삼아 저지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구 자체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삼고,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모든 공공적 기능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의 하나이다. 이를 위해 많은 나라들이 이념의 차이에 관계없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적인 사회 보장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려 할 때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기업이 삼성생명이었다. 국가가 다 보장해주면 삼성생명은 보험을 팔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성이 꿈꾸는 세상이란 부자들은 감기만 걸려도 삼성병원 특실에서 황제처럼 대접받고 가난뱅이들은 죽을 병이 걸려도 동네병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앓다 죽는 세상, 부자들은 외국산 수입 생수로 집안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때, 가난뱅이들은 재벌 기업이 운영하는 비싼 수도 요금을 내지 못해, 화장실과 부엌에 수도가 끊어져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고 빗물을 받아먹어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악몽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더 늦기 전에 삼성을 해체해야 한다. 우리가 박정희, 전두환 씨를 권좌에서 쫒아 내고 군부의 권력을 해체한 뒤에야 비로소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회장님'의 권력을 박탈해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삼성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결코 기업 독재를 끝낼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자식들은 재벌 기업의 머슴으로 종노릇하는 운명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삼성 제품 불매는 자본의 독재, 삼성의 독재를 끝내기 위한 대장정의 첫 걸음이다. 유명무실한 삼성 특검 수사와, 대다수 범죄 행위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려줌으로써 요식 행위에 그친 재판과, 그 재판을 통해 내려진 법의 심판조차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린 최근의 특별 사면을 통해 분명해진 것처럼, 국가기구는 더 이상 삼성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미 삼성에 매수되어버린 국가 기구가 삼성이 온전한 기업이 되도록 만들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회장님의 비서가 회장님의 불법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소망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삼성을 해체하고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소비자뿐이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은 공치사가 아니다. 화폐가 자기 증식 운동을 시작하면 자본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자본은 결코 저 혼자 불어나지는 못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털어 불어나는 것이다. 국가가 없다 하더라도 자본은 자기 증식할 수 있다.

자본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까닭도 본질적으로 보자면 그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와 소비자가 없다면 자본은 절대로 혼자 증식할 수 없으며,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자본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노동자들과 소비자들밖에 없다. 하지만 삼성엔 노동조합이 없다. 삼성이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더 사악한 반사회적 기업이 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안팎으로 아무런 견제가 없는 권력이 어떻게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도 노동조합도 삼성의 불법을 바로잡을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직접 행동뿐이다. 삼성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자기 제품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든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삼성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그날로 삼성은 아무 것도 아니다.

게다가 삼성은 주방용 가전제품부터 안방의 청소기, 사무실의 전화기와 컴퓨터, 가방 속의 노트북과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 그 속의 반도체 그리고 지갑 속의 신용카드, 생명보험자동차보험 등,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이루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삼성제품으로 채운다면, 마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우리 모두 삼성의 먹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삼성제품을 거부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버릴 것은 수도 없이 많이 널려 있다.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해약하고 해지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자. 지구 위에 생명체가 등장한 뒤에 모래알처럼 작은 개미들은 영원히 살아남아도 공룡이 멸종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게다가 삼성이란 공룡을 멸종시키기 위해 우리가 엄청난 노고를 쏟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하지 않으면 된다. 삼성 제품을 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는 일은 어려워도 하지 않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하던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일은 오직 하나, 마음을 바꾸는 일뿐이다. 우리의 삶을 삭막한 사막으로 만드는 것도, 푸른 초원으로 바꾸는 것도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 그 실상을 깨닫고 삼성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과 삼성의 권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생각하면 이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소비자의 권리라 생각한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삼성은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기업임이 분명하다. 제품의 품질은 물론이고 저녁 시간에 냉장고 수리를 신청했더니 두 시간 반만에 고쳐줄 정도로(<한겨레> 3월 9일자 김선주 칼럼) 완벽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지 않는가. 하지만 그런 완벽한 서비스의 이면에 그만큼 완벽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통제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도구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아무 불편 없이 저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나의 냉장고를 수리하러 온 노동자가 자기 가족과의 저녁 식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헤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와 소비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윤리이다.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나 개인이 느끼는 만족이 아니라 그 제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전 과정이 얼마나 정의롭고 자연 친화적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것이 소비자로서 제품 선택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 불매 운동이란 단순히 외적 억압과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들 내면의 탐욕 및 아집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철학자가 삼성 불매 운동의 선두에 나선 까닭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비싸더라도 유기농 농산물을 선택하고 공정 무역 커피구매한다. 아마도 거기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보다 좋은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개인적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려 하는 인간의 선한 의지이다. 그런 선한 의지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해 왔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삼성을 해체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려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한국의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재벌 경제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더불어 같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나중에 삼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하기 전에 무조건 삼성 제품을 불매함으로써 삼성의 권력을 해체하는 일을 즉시 시작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에 '박정희 타도'가 무조건적인 대의였으며, 전두환 독재 치하에서 그 독재자의 제거가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선결 문제였던 것과 같다. 그렇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삼성 불매를 통해 삼성과 이건희 일가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앞서는 역사적 과제라고 우리는 믿는다.

어떤 경우이든, 분명한 것은 박정희 씨가 죽었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았듯이 삼성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쓰지 않고 다른 회사 제품을 쓴다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와 나라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이제 우리, 삼성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자. 그리고 삼성 제품을 쓰지 않는 것이 고상한 인간의 품위와 교양의 징표가 되게 하자.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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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자랑 좀 하겠습니다.

2010/03/08 16:35 | Posted by PeterHan

3월 4일,
소금 구경(?)을 하러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 다녀왔다.
여러 코치님들과 함께 움직이는 여정이 정말 즐거웠다.  (그건 별도 이야기로 해보자.)

이곳은 건강을 위한 소금 동굴 (있기만 해도 몸이 좋아진다.!!), 소금 레스토랑, 소금 박물관 등 소금에 대한 여러가지를 보고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뭐 굳이 소금보러 그렇게 갈 필요가 있을까?? (라고 나도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소금이 뭐 짜면된거고 맛 내주면 되는거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식함을 깨고 좋은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이라고 말해야겠다.

특히 증도 태평염전에서 나는 소금은 세계적으로도 1,2위를 다툴 정도의 훌륭한 천일염이라고 한다.  (박물관에 가면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소금동굴과 레스토랑 사이의 정문에 위치한 소금 전시관 및 판매장 
인테리어가 동굴처럼 되어 재미있다. 


소금 동굴 힐링 센터라고 되어있다.  10분여를 누워있었는데 뭔가 느낌이 온다.
(조만간 서울에도 2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기대기대)


3년 묵은 천일염이라는데 와인의 빈티지 처럼 연도가 오래될 수록 맛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먹어보니 오래된 소금은 간수가 빠져서 실제로 맛이 있다.)


죽염, 예전에 양치할때 썼었는데..



소금 식당.  짠맛나는 음식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을??ㅋ)
훌륭한 식사를 부페로 즐길 수 있었다.


소금동굴 힐링센터, 초입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옆에는 장난감들)


천정에 소금 고드름(허??!!)


사진으로는 환상적이고 실제로는 차분하고 편안하다.








분수에서 물이 떨어지며 좋은 소리를 낸다.  더 자고 싶었는데 밥먹으라고 해서 가면서 찍었다.

함께 다녀온 코치님들, 헉.. 뒷모습만..


염전과 맘모스의 이동에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설명을 잘 들었는데 잊어먹었다.. ㅡㅡ;;;



박물관 초입에 있는 장식. 난 좋아 보이던데 왜 홀로 입구에??


엘도라도 라는 증도의 펜션에 있는 커피숍.  날씨가 흐려 아쉬운데 경치가 정말....

http://www.samsundvt.co.kr/ (삼선그룹 : 섬들채이외에 여러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의식경영을 실천하는 회사다.)
http://www.sumdleche.com/ (섬들채, 좋은 천일염으로 만든 제품들이 있다.)

의식경영을 실천하는 손일선 회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있어 올려본다. (섬들채 홈페이지에 있음)   회장님, 참가한 분들의 편의를 위해 저희와 함께 서서했던 점심식사, 직접해주신 설명, 모두 감동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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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섭이 머리. 한제인 양.

2009/12/29 09:22 | Posted by PeterHan
아빠의 작품.
아내는 이게 뭐냐고 하면서 며칠간 불만이 많았다.
나는 귀엽기만 하구만.. 조금 아들같이 보여서 그렇지..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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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 남보원, 명대사 정리~!!

2009/11/21 15:00 | Posted by PeterHan
이 글은 아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blog.naver.com/tistorygee/130071304477

TV를 원래 안보는 편에다 딸이 태어난 이후로는 정말 뉴스 가끔 보는것을 빼고는 볼 일이 없다.
그래도 가끔 챙겨보는 두개가 있으니 다큐멘터리, 그리고 개그 콘서트.
그중에서도 황현희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다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남보원도 대박!
이미 결혼을 했음에도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집사람과 함께 보면 더더욱 재밌다. ㅎㅎㅎ

싱글일때 이렇게 굴욕적?? (해석하기 나름..) 데이트를 해본적은 없는듯 하다.   매너있는 분들을 주로 만나왔기 때문인가?
조금 오버하자면 남녀 역차별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는 한다.

 

< 9월 27일 방송분 >

커플링은 내가 샀다! 이벤트는 니가 해라! / 니가 해라 니가 해라! 트렁크에 풍선 넣라!
커플링은 내가 샀다! 헤어질때 반납 해라! / 내가 샀다 내가 샀다! 억울하다 더 사귀자!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가방들고 소변봐라! / 집에서는 귀한 아들 너한테는 짐꾼이냐!
왜 이렇게 안나오냐! 영화 이미 시작 했다! / 안나오냐 안나오냐! 그안에서 담배피냐!
뽕넣는거 인정한다. 키높이도 인정해라! / A컵도 인정한다! 백육십도 인정해라!


< 10월 4일 방송분 >
영화표는 내가 샀다! 팝콘 값은 니가 내라! / 니가 내가 니가 내라! 영화표가 더 비싸다!
팝콘 값도 내가 냈다! 집에 갈땐 혼자 가라! / 혼자 가라 혼자가라! 우리 엄마 기다린다!
니 생일엔 명품 가방! 내생일엔 십자수냐!!!

여자 친구 눈치 볼것 없습니다!!! 남자 분들일어 나십시오!!
"여성 여러분 보고 계십니까? 영화표값 아끼고 팝콘값 아껴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극장에서 음식점에서 양보만 해왔습니다. 커피값은 내가 내고, 쿠폰 도장 니가 찍냐
커피값은 내가 냈다. 진동오면 니가 가라!
니가 가라, 니가 가라! 내가 여기 알바하냐!"
"자, 여기서 끝날 게 아닙니다. 남자분들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불평등한 상황에서 당당하게 일어나 여자들을 향해 당당하게 외칩시다."

< 10월 11일 방송분 >
약속시간 6신데 6시에 머리감냐!
고데기는 1시간, 고데기는 하지 마라!
운전은 내가 한다 / 기름 값은 네가 내라!
기름 값도 내가 냈다 / 톨비(톨게이트비)도 내가 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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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어느 청구서와 영수증.

2009/05/15 10:14 | Posted by PeterHan
오늘 문득, 바쁘다는 것은 그냥 마음(에고)의 장난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보다 더 바쁜 것처럼 나를 속이고 불안하고 정신없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중 하나가 아주 짧은 좋은 글 하나 읽을 시간이 없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어울리는 좋을 글이네요.  제가 참으로 존경하는 멋진분께 받은 메일에 있었습니다.


어느 청구서와 영수증


어느 날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린 딸아이가 부엌으로 들어와서
아내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밀었다.

이번 주에 내 방 청소한 값---2,000원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1,000원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봐 준 값---3,000원
쓰레기 내다 버린 값---1,000원
아빠 구두 4켤레 닦은 값---4,000원
마당을 청소하고 빗자루질 한 값---2,000원
전부 합쳐서---13,000원

아내는 13,000원을 받을 기대에
부풀어 있는 딸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내의 머릿속에 딸아이에게
해줄 말이 떠오른 것이었다.
곧 아내는 연필을 가져오더니
딸아이가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너를 열 달 동안이나 내 뱃속에 넣고 데리고 다닌 값---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새워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무료!
지금까지 널 키우며 힘들었고 눈물 흘린 값---무료!
장난감, 음식, 옷, 그리고 네가 흘리는 코를 닦아준 값 등---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게 쏟은 진정한 애정까지 전부---무료!

딸아이는 아내가 쓴 글을 다 읽고 나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그러고는 연필을 집어 들더니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사랑밭 새벽편지]에서 퍼온 글




부모님 사랑을 어찌 값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우린 그 큰 사랑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값없이 받았던 사랑이기에
우리 자녀들에게도
값없이 물려줄 수 있나봅니다.

- 그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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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송 이외수 선생님 편.

2008/12/28 14:26 | Posted by PeterHan
이외수 선생님 멋집니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살아야지, 언제나 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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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 그리고 취업난

2008/11/27 12:13 | Posted by Peter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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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웃겨서 올려둠 - 문자 유머

2008/11/24 10:36 | Posted by PeterHan
인터넷에 도는 유머, 너무 웃겨서 퍼왔습니다.

님 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어도 완전히 달라지는 게 우리말이다. 그만큼 철자 하나, 맞춤법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보편화된 지금, 무심코 보낸 문자 하나에 받는 사람은 당황하기도 하고 눈물을 쏙 빼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버튼을 누르다 보면 오타가 나기 십상이기 때문. 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휴대폰의 버튼은 너무나도 작다.

 

네 티즌들은 문자 오타로 인해 겪었던 황당한 에피소드를 주요 포털사이트에 올리며 즐거운 '댓글놀이'를 하고 있다. 절묘하게 오타가 난 문자들은 흔히 실수하기 쉬운 글자들. 특히 문자 누르기에 익숙치 않은 부모세대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압권이다. 체험을 근거로한 댓글 릴레이가 큰 공감을 얻으며 네티즌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 여자친구 : "원하는 거 없어?"

남자친구 : "원하는 거 ㅇ 벗어"

 

☞ 친구에게 피자를 먹는다고 보내려던 문자

"나 지금 피지 먹어"

 

☞ 관심이 있어 작업 중이던 여자에게 "너 심심해?"라고 보내려던 문자

"너 싱싱해?"

한 방에 차였다.

 

☞ 밖에 나간 동생에게 보내려던 문자

"올 때 메로나(아이스크림 이름)"

그러나 택배아저씨에게 잘 못 갔다.

 

☞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펑펑 울고 있는데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온 문자

"좋은 감자 만나"

 

☞ 차인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나 오늘 또 울었다"라고 보내려던 문자

"나 오늘 똥루었다"

 

☞ 목사님께 "목사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라고 보내려던 문자

"목사니도 주말 잘 보내세요"

 

☞ "할머니 중풍으로 쓰러지셨어"라고 보내려던 문자

"할머니 장풍으로 쓰러지셨어"

 

☞ 학원 끝나고 "엄마 데릴러와"라고 보낸 문자

"임마 데릴러와"

 

때로는 부모의 오타가 우리를 웃게 만든다.

 

☞ 학교 수업시간에 아버지께 온 문자

"민아야. 아빠가 너 엄창 사랑하는 거 알지?"

 

☞ 봉사활동에 가던 도중 어머니께 온 문자

"어디쯤 기고 있니?"

 

☞ 생선회를 너무나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아버지께 주말에 회 좀 사달라니까 "회사간다"는 아버지의 답장. 그러나 정말 회사 가셨다.

 

☞ 인터넷 용어 '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시는 어머니께 '즐겁다'는 뜻이라고 가르쳐 드리자 학교 수업시간에 온 어머니의 문자

"우리 아들 공부 즐"

 

☞ 올 때 전화하라고 말씀 하시려던 어머니의 문자

"올 때 진화하고 와"

 

☞ 어머니께서 보내신 무엇보다 무서운 문자

"아빠 술 마셨다. 너의 성적표 발견. 창문으로 오라"

 

☞ 문자 내용이 많을 수록 요금이 많이 나가는 줄 아신 어머니께서 딸이 밤이 늦도록 들어오지 않자 딸에게 보낸 문자

"오라"

 

☞ 신발 사이즈를 묻는 어머니의 문자

"너 시발 사이즈 몇이야"

 

☞ 휴대폰을 처음 사신 아버지께서 보내신 문자

"아바닥사간다"

아버지는 통닭을 사오셨다.

 

☞ 특수문자를 쓸 줄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보내신 문자

"너 지금 어디야 물음표"

 

☞ 음성 메시지 확인 방법을 모르시는 아버지

"아~아~ 잠깐, 잠깐! 내 말 좀 들어봐요"

아버지께서는 음성 메시지와 대화하셨다.

 

[출처] 졸린 점심시간,, 잠시 웃어보아요 ^^ (HRD 카페(교육지기)) |작성자 상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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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 컨텐츠의 경쟁력.

2008/09/17 09:08 | Posted by PeterHan
참..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다.   작은 선물하나를 받고서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스토리텔링 사업을 하는 김은애 소장님이 일본을 다녀오며 토토로 인형을 선물해
주셨다.  한동안 일본을 가지는 못했어도 일본의 문화 컨텐츠 경쟁력을 깊이 느끼고
인식해 왔던 한 사람으로서 선물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물은.. 어찌보면 그냥 흔히 볼수 있는 철제 태엽 인형.

그런데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포장과 작은 미니 인형이었다.
우선 포장, 토토로 애니의 배경과 같은 색상과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포장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같이 TV앞에 전시해 두었다.)
그리고 작은 미니 인형, 커다란 토토로의 뒤에 끈에 매달려 쫄쫄쫄 쫓아오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포인트, 단 두가지만으로도 흔한 철제 태엽인형이 꼭 갖고
싶게 만드는, 선물하고 싶게 만드는 물건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캐릭터도 많이 따라왔다.  헬로키티등을 보면서 우리가 더 많은 열린마음을
가지고 문화컨텐츠를 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도 생각하는 것이지만 생각을 너무 많이 한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단은 그렇다는 것이고, 예쁜 선물을 받게 되어 기분좋고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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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다~ 몸에좋고 맛도좋은 돈이다.~

2008/09/07 11:48 | Posted by PeterHan
싱가폴에서 오는 길에 돈 초코렛 한봉지 샀다.
WCCF코치님들과 나눠먹기 전에 찍었다.  폰카라 화질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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