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가지고만 있었던 것을 쓰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어 써봅니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3학년인 김예슬 학생이 자퇴와 함께 대자보를 써붙였네요.
(아래에 붙여 보겠습니다.)
저는 고3때 소위 말하는 고3병을 앓았(??)습니다. 책상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깼는데 다시 꿈이고 또 깼는데 다시 꿈인 적도 있었고, 분명히 누군가 불렀는데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는 경험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심신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이죠.
당시 학력고사 마지막 전(前) 세대였던 나는 전기(4년제), 후기(4년제)를 모두 떨어지고 전문대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재수'를 생각했고 (원래 성적이 나쁜 편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아무생각 없이 '재수'는 없다!! 고 이미 선언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전문대를 다니고 졸업할 때가 되어 빨리 돈을 벌면서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가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주위 친구들 (남자 복학생) 절반 정도가 이미 '편입'을 위해 맹렬히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학교는 잘 나오지 않았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하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또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 역시 학교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문대를 다니고 있어 마음속에 컴플렉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생활을 했고 좋은 교수님도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학생들이 컨닝 (정확히는 Cheating)을 한다는 것, 시험이 끝나고 나면 도서관이 텅텅 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은 편입이라는게 있어서 준비해요.."라고 지나가는 말로 부모님께 이야기 했더니 부모님은 4년제 대학에 가는거라면 좋은게 아니냐.. 라고 (나에게 부담주기 싫으셔서) 아쉬움을 내비치셨습니다.
사정이 그러해서 "그럼 한번 시험이라도 볼께요."라고 한후 두달여를 준비해서 몇곳에 시험을 보았습니다.
편입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군대 제대 직전부터 영어공부를 목숨걸고 했던 터에 외국어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서울대 합격보다도 기뻤습니다. (외국어를 워낙 좋아해서..)
부푼 꿈을 가지고 대학에 갔습니다. 뭐 .. 외대 캠퍼스가 작다는 건 워낙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외에 실망할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물론 제가 본 단편만 그럴 수 있습니다.)
(내 생각에) 외대쯤의 수준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컨닝을 하고 있다. 성적을 높이기 위해... 도서관은 시험직전에는 미어터지지만 시험끝나면 텅~ 빈다. 무역학과 수업이 영어로만 진행할까봐 긴장했는데 전공수업중 영어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교수님은 영어를 잘하시는데 학생들이 몇년전에 한국어로 해달라고 했단다. '한국과 세계'라는 영어 특강을 신청했는데 솔직히 한국인 교수님의 영어 발음도 엉망이었을 뿐 아니라 중반 넘어가면서부터는 아예 한국어로 했다. 도서관에 장서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있는 것도 오래되거나 안봐서 먼지만 쌓여있다.........
그런데도 IMF시절을 대학에서 보낸 나에게 등록금은 비쌌습니다.
물론 학생회장을 비롯해서 학생들이 적잖이 데모를 하기도 했고, 총장비리 사건으로 더더욱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편입한 사람은 원래부터 그 학교 학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만의 자격지심일 수 있지만) 조용히 다니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비겁함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김예슬 학생의 대자보를 보며 그 때의 내 생각이 겹쳐져서 다음의 글을 써봅니다.
(현재 대학생 여러분께...) 제가 잘난척하는 것 같이 비춰진다면 용서해 주세요.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다양한 학과, 학부의 수업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편입한 이후에 관심이 있었던 영어, 중국어, 일본어, 심지어 스페인어까지 수강을 했습니다. 학점이 넘치고 시간이 안맞아서 한시간 반만 청강하게 해달라고 원어민 교수에게 조르기도 했습니다.
제게 있어 대학은 말그대로 '학문적 소양을 넓히는 곳' 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별로 유명한, 내공있는 교수님의 얼굴을 매주 보는 것 만으로도 대학이라는 것에 의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도서관의 장서를 얼마나 보셨습니까? 저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장서를 둘러보았습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했지요.) 그리고 항상 두권의 책을 빌려서 한시간 걸리는 통학길에 읽었습니다. 외대 도서관이 좁기는 좁더군요.. 지금은 좋아졌겠지만..
여러분은 수업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들었습니까? 저는 재미없고 느릿느릿한 교수님의 강의가 있을때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영어로 바꾸는 훈련을 계속했습니다. 내가 배운 전공은 최소한 영어로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된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학교 부대시설을 최대한 이용하십니까? 저는 왜소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학교 헬스센터를 찾아다니고 (참 지금 생각하면 돈 뽑아먹으려는 노력이었다... 싶기도 합니다만..) 랩실에서 며칠을 끝날때까지 있어 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학비를 벌기위해 과외도 했지만 노가다, 이삿짐센터, 드라마 엑스트라, 꽃배달(용산 미군기지에서), 휴학하고 일본에서 요리, 설겆이 등등 많은 일을 해봤습니다. 이런 것들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가능하게 해준것이지 대학이 해준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신분을 입증해주는 대학생이라는 것은 대학이 제공해 주지요.(뭐 맘에 드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하다보니 좋은 친구들이 많았지만 청강 때문에 혼자 밥먹어야 하는 일도 많았고, 저녁에 당구나 PC방 갈 수도 없었습니다. (갈 돈도 별로 없었습니다만 ㅋㅋ)
굳이 이렇게까지 나름의 잘난척을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학교에 입학해서 학교가 주는 것을 최대한 체험해보고, 도서관을 다 뒤져보고, 여러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보고, 질문하고, 필요하면 비평하고, 모르는 것 계속 쫓아다니며 물어보고, 필요하면 대학이 못주는 경험을 하고, .... 이렇게 할만큼 하고도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면 그때 정당히 항의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돌맞을 소리인가요?)
등록금이 정당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봐도 너무 비쌉니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수준에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무엇을 주고 있는지 알고, 대학생으로서의 최선은 다했는지를 반성한 다음에 지.대.루. 항의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이런 대학생활을 했으니 모든 학생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든, 중퇴를 하든, 방통대를 가든, MIT 공짜 온라인 과정을 수료하든, 그냥 불평만 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보고, 맛을 본후에 주위를 탓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김예슬 학생의 용기와 대자보의 글에 격려와 감사를 보냅니다. 이정도의 생각과 용기를 가진 분이라면 분명히 의미있는 삶을 찾을 것입니다. 당분간은 힘들더라도 충분히 길을 찾을 것입니다. 당신의 열정과 능력을 믿습니다. 화이팅!
자퇴 대자보! 10일, 대학생 김예슬 씨는 다니던 대학에서 '자발적 퇴교'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혼자 조용히 자퇴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장문의 대자보를 다니던 대학에 붙였습니다. 전지 3장의 글에는 끊임없는 불안과 경쟁만을 조장하는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 담겼습니다. (☞관련 기사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그는 대자보에서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대기업 하청 업체가 된 대학을 거부한다"고 외쳤습니다.
김예슬 씨는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학생입니다. 높은 등록금과 취업난 때문에 방황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세대의 솔직한 심정을 적은 그 대자보의 내용은 많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용기에 큰 격려와 감사를 보냅니다.
바쁜 외출 시간에 쫓기면서 이렇게 다시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개인적인 사정도 한 몫 합니다. 이 '자퇴 대자보'를 읽어보니, 구구절절 내가 둘째 아이와 벌인 논쟁들이 거의 담겨져 있더군요.
▲ "대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알만 낳는 닭이 아니다. 나는 알 낳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 ⓒ프레시안
둘째 아이가 지난 여름, 세 번째 자퇴를 선언했습니다.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을 거쳐 세 번째입니다. 그 애도 김예슬 씨처럼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다녔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자퇴를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주장은 "대학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알만 낳는 닭이 아니다. 나는 알 낳은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가장 큰 이유는 '경쟁에 대한 환멸'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대학 등록금을 비롯한 대학 교육 과정, 대학 운영 방식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됐습니다. 무엇보다 '경쟁하기 싫다'는 그 때 그 아이의 주장을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부모이기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대학 졸업장만 따라"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하다못해 그 애의 20대 친구들까지도 그랬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편한 길 중에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부모인 나는 둘째 아이의 자퇴 선언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는 내 아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세상을 살기를 바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애가 처음으로 자퇴를 선언한 15살부터, 지난 10년의 시간은 서로에게 많은 고통과 갈등,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의 외로움이 뒤범벅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세 번의 자퇴 선언을 통해 나름의 주체성과 창의력, 열정과 문화적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인생은 공평한지라 그에 따르는 어려운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결국 부모의 요구를 애처롭게 여긴 둘째 아이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이번에 자퇴 선언이 나온 그 대학교에 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3월 2일 새 학기를 시작해 이제 두 번째 주를 맞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김예슬 씨는 대자보에서 이 선택으로 "길을 잃고 상처받을 것"이며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용기 있는 고백입니다. 모두들 닭장에 갇힌 '닭'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의 의지와 용기는 한국 사회에 샘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퇴 대자보에 많은 학생이 관심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카메라를 들고 등교한 둘째 아이도 아마 그 대자보가 붙은 장소에 들를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둘째 아이의 자퇴 선언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 제 한계를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김예슬 씨를 포함해 이를 받아들인 그의 부모님, 대학 자퇴를 꿈꾸는 또 다른 아이들, 자퇴를 둘러싸고 부모와 갈등을 겪는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행운과 평화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자퇴가 '개인의 심각한 선택'이 아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될 날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다짐해봅니다.
* 인간은 '왜?'에 스스로 답할 수 있을때 진정으로 학습한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왜 그일을 하는지, 당신이 학생이라면 왜 그 공부를 하는지 자신있고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본인이 원하고 꿈꾸는 것인가?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가를 깨닫는 순간부터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헐리웃에 카메라 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어공부를 하고 카메라를 공부한다. 외국인을 쫓아다니고 KBS를 기웃거리는 등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기발한 아이디어로 원하는 것을 이룰 방안을 모색한다.
'공부해야지' 할때 '공부해!!'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을때를 기억하는가?
"왜"를 먼저 찾고 "어떻게"를 생각해야 한다.
* 당신은 충분한 경험을 자발적으로 했는가?
EBS '삼국의 거상'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중국 회사의 사장 인터뷰가 있었다. 그는 20대에 이미 엄청난 부자이면서 기업가가 되었는데, 10대때 중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사업 기회를 엿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토바이 가격이 중국 북부와 남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과감히 투자를 했고 성공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
교실에서는 듣는 지식과 약간의 경험은 개인에게 제한된 유익만을 준다. 자기가 실제로 발로 땅을 밟아보고 낯선 이들에게 용기내어 말을 걸어보고, 사람과 사물을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들... 이런 기회를 학교는 제공하지 않는다.
수학여행을 기억하는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수학여행에서 선생님들의 최대 관심사는 '문제없는 안전한 여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의 추억속에는 버스에서 자고 여행지에서 사진 잠깐 찍고 또 버스에 타는 60~70대 어른이 관광하는 것 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30대 직장인에게 물어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왜??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떄문이다. 토익과 학점은 아쉽지만 경험과는 거리가 있다.
* 용기가 필요하다.
거창한 용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부터 내가 원하는 삶을 설계하기 위해 작은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부모님과 사회의 요구에 단호하게 No! 할수 있는 용기부터, 본인이 원하는 것에 고집스럽게 Yes!할수 있는 용기, 어려움에 처했을때 전문가나 후원자에게 가서 말을 걸수 있는 용기!!
수많은 사람들이 취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채용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고만고만'한 고학력자들이 많이 있다. '고만고만'은 수준이 낮다는 뜻은 아니다. 비슷하게 찍어져 나온 인재가 워낙 많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은 비슷하게 찍어져 나와도 예쁘게 잘나오면 선택이 되는 방식이었다. 지금의 문제는 비슷하게 , 예쁘게 찍어져 나오는 경쟁자가 많다는 뜻이다.
'다르게, 약간은 덜 예쁘게' 나오는 인재는 여전히 많지 않다.
대학교 입학에 실패한 한 고교 졸업생이 직접 가짜 대학을 설립하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다룬 10대용 코미디물. 영화는 주인공
'B' 역을 맡은 <지퍼스 크리퍼스>의 저스틴 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배우들로 출연진을
구성하였는데, <그랜드마 보이>의 조나 힐, <세이브 라스트 댄스 2>를 촬영중인 콜럼버스 쇼트,
<히치>의 마리아 싸이어 등이 공연하고 있다. 연출은 <그로스 포인트 블랭크>,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등을 제작했던 스티브 핑크가 담당했는데, 이번이 그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제작은 <브루스 올마이티>,
<라이어 라이어>의 감독 톰 쉐디악이 오랜 파트너인 마이클 보스틱과 함께 담당했다. 미국 개봉에선 첫주 2,914개
극장으로부터 개봉 주말 3일동안 1,002만불의 수입을 벌어들이며 주말 박스오피스 5위에 랭크되었다.
지원했던
8개 대학에서 모조리 입학 불합격 판정을 받은 고교졸업반 바틀비 게인스, 일명 'B'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하여 대학 커리어도 쌓고 여자친구에게도 당당해 질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이 내린 결론은 단 하나. 직접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단순히 자신들을 위해 '사우스 하몬 기술대학교'라는 가짜 대학을 오픈한 첫날, B와 친구들은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한다. 자기들처럼 대입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대학 입학을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제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돌아가고, 주위의 명문대학생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가운데, B와 친구들은 '학생이 곧 교수'라는 황당한
룰을 설정해 이 가짜 대학을 유지해 가는데...
미국 개봉시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였다. 아리조나 리퍼블릭의 랜디 콜도바는 "시끄럽고 멍청하며, 심할 정도로 활기가 없는 영화. 웃기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라고 공격했고, USA 투데이의 클라우디아 퓨즈는 "이 영화는 <애니멀 하우스>의 새로운 변종이
되기를 원하지만, 적어도 그 1978년산 걸작 코메디는 대학 생활의 시끌법썩한 면을 다루었을 뿐, 이 영화처럼 가식이
없었다."고 비판했으며, 할리우드 리포터의 마이클 레흐트샤펜은 "몇몇 진짜로 웃기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이 낙오자 대학생
코메디는 자신의 가능성있는 소재를 살리는데 실패한다."고 평했다. 또, 뉴욕 데일리 뉴스의 엘리자베스 와이츠먼은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에는 너무나 게으른 영화."라고 고개를 저었고,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의 제프 스티클러는 "이 영화가
<아메리칸 파이>에 영감을 받아, <애니멀 하우스>로부터 <너즈의 복수>까지 수많은 코메디물들을
짜집기 했음을 알지 못할 아주 어린 관객들에게나 웃음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불평했으며, 뉴욕 포스트의 카일 스미스는
영화 내용을 빗대어 "너무나 멍청한 이 영화는 마치 지역 소규모 대학 영화학과의 재수강반 학생들이 만든 ..
여기까지는 네이버에 올라와 있는 영화 평.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
영화평론에서 10대를 위한 영화다, 그리고 평론가의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는 것에 이해가 갔다.
내가 개인적으로 보면서 느낀 것은 'F*cking Funny'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에게 왜 재미있었을까? 나에게도 무엇인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어제 12일에 '수능'이 끝났다.
우리는 남성평균 26세, 여성평균 24세쯤이 될때까지 '시험'이라는 것에 목을 매며 살아야 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제고사가 뉴스에 오르내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토익과 학점관리에 신경을 쓴다. 적지않은 대학생들은 이미 초딩때부터 시험과 성적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을 정리해 보고 싶다.
1. 물론 이상적인 것 인정한다.
- 항상 그렇듯 드라마나 영화 대비 현실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속에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2. 저항이 아니라 공존을 원하는 것이다.
- 가장 공감한 부분이다. 법과, 의과대학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학문은 꼭 필요하다. 당장 몸이 아픈데 마약을 놔주는 의사를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공존'은 꼭 기억하고 싶다.
- 열심히 공부하고 기존의 제도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은 그들의 축복받은 길이 있다. 그런데 꼭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할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학교와 부모들은 그러한 길을 강요한다. 그 이외의 길도 갈수 있도록 개발을 하고 지원을 해야 한다.
3. 교육의 진짜 목적이 가려져 있지는 않은가?
- '취업이 잘되는 대학' , 소위 명문대 몇곳을 제외하면 내거는 간판이다. 대학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취업이 목적인 대학이라면 뭣하러 취업해서 배우지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게) 배우고 취업을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대학은 개인이 어떤 학문에 대해서 순수한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다방면으로 탐구를 해볼 수 있는 4년의 기간이다.
- 그런데 오로지 '취업'을 목표로 과외활동, 봉사활동, 학습활동을 한다면... 개인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4. 원하는 것을 하는데는 물론 어려움은 따른다.
- 영화속에서는 즐거운 장면들만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그리고 탐구해 보는 시간을 얼마나 주었는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 특히 사회가 원하는 방향과 약간 달라보이는 것을 하는데는 많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개인이 그것을 하고 싶은 이유가 분명하다면 부딪쳐 볼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영화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이라면 혹시 자신의 자녀나 후배들이 '나는 이런 특별한 것을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었을때 똑같이 코웃음 치는 사람이 아닐 지 꼭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