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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속에서 온 생각 — 50이 넘어 처음 바닥을 본 날

요약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의 프롤로그에서 옮긴 글입니다. 탕 속에서 "책을 내야겠다"는 문장이 걸어 들어오기 1년 전, 저는 좀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1년 동안 찾은 답은 더 열심히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순서였습니다.

그 생각은 목욕탕에서 왔습니다.

운동을 끝내고 탕에 발을 담그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 중 제가 유일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계획도 세우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멍하니 물결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 멍한 머릿속으로 문장 하나가 불쑥 걸어 들어왔습니다.

"책을 내야겠다."

그 생각은 목욕탕에서 왔습니다

솔직히 저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생각이 떠오르기 불과 1년 전의 저는 책은커녕 하루를 버티는 것도 벅찬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때의 저는 이랬습니다. 아침에 눈은 떠 있는데 정신은 켜지지 않았습니다. 운동도 했고, 열심히 산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늘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잠이 몰려왔고, 눈꺼풀은 늘 무거웠습니다. 한마디로 좀비였습니다. 걸어 다니고, 말도 하고, 일도 하는데, 살아 있다는 느낌만 없는 좀비.

밤이 되면 그 좀비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잠이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귓속에서 소리가 울렸습니다. 세상이 조용해질수록 소리는 커졌습니다. 새벽에 간신히 잠들었다가 깨면, 소리는 체감상 두 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다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계속된다면, 이 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커진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을 붙잡아 준 것은 의지나 긍정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밤마다 소리와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힘든 시기를 보낸 사람이구나. 그런데 한 가지를 더 말씀드려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조금 부끄럽습니다. 저는 긍정을 말하며 먹고살아온 사람입니다.

20대 후반부터 자기계발 모임을 만들어 이끌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긍정적인 사고를 외쳤습니다. 30대 중반부터는 아예 직업이 되었습니다. 코치라는 이름으로, 강사라는 이름으로, 20년 가까이 가능성과 성장과 좋은 태도를 이야기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밤마다 귓속의 소리를 들으며 삶의 반대편을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긍정을 말하며 먹고살아온 사람

왜 나는 지금 이 모양일까

그 시절 제 안에 가장 크게 차 있던 감정은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화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성실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도 썼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 모양일까. 이 정도 살았으면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고, 남에게 베풀 수도 있어야 정상 아닌가. 혹시 여러분도 비슷한 질문을 품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열심히는 사는데 인생이 그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다는 느낌 말입니다.

저는 그 질문을 붙들고 1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답을 하나 찾았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그 답은 "더 열심히"가 아니었습니다. 더 독한 각오도, 더 새벽 같은 기상도, 더 뜨거운 긍정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노력이 아니라 순서였습니다.

체계적으로, 성실하게 놓쳤습니다

저는 순서를 놓치고 살았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체계적으로, 성실하게 놓쳤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을 믿고 잠부터 줄였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여덟 시간을 자야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과는 인생 최악의 성적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부지런히 챙겨 먹으며 몸을 망가뜨렸습니다. 네, 제대로 읽으신 게 맞습니다. 보양식을 먹어서 망가졌습니다. 이건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책 좀 읽는다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어서 철학책을 사서 펼쳤다가 5분 만에 덮은 적도 있습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그날 저는 제가 무엇을 먼저 공부했어야 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5분이 이 책의 두 번째 절반을 만들었습니다. 몸의 순서를 다시 세우고 나니 질문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남은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저는 그 답을 자기계발서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무엇을 하라고는 말하는데, 사람이 왜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답이 있던 곳이 인문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에도 순서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10년 넘게 몰랐습니다. 책을 많이 샀고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는 게 없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지혜에 대한 지식만 채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식마저 일천하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한 단계 성장했다면, 이제야 제 수준을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인문학에도 순서가 있었습니다

지난 1년, 저는 순서를 다시 세웠습니다. 그러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몸이 먼저 돌아왔고(온전하게 돌아온 건 아닙니다만), 그다음에 감정이 돌아왔고, 마지막으로 머리가 돌아왔습니다. 이 순서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50이 넘은 지금, 저는 평생 처음으로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뜨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평생 처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상쾌하다고 느낀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습니까.

아래가 위를 떠받친다

책의 뼈대는 세 개의 순서입니다. 첫 번째는 회복의 순서입니다. 음식이 먼저고, 운동이 그다음이고, 감정이 그다음이고, 생각이 마지막입니다. 저는 거꾸로 살았습니다. 생각으로 감정을 이기려 하고, 정신력으로 몸을 끌고 가려 했습니다. 저는 30년 넘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1부에서 제가 세 번 무너진 이야기와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삶의 순서입니다. 이상이 먼저인가, 현실이 먼저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입니다. 저는 인생 전반부 내내 이상 쪽에 서 있었습니다. 옳음을 따졌고, 도덕을 따졌고, 의미를 따졌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현실이라는 토대가 없는 이상은 저를 자유롭게 하기보다 자주 공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부동산과 재테크 이야기가 나옵니다. 평생 남의 돈에 기대어 살면서 돈이 세상을 떠받친다고 말한 어느 수염 난 철학자의 아이러니도 나옵니다. 2부입니다.

세 번째는 공부의 순서입니다. 지리를 알아야 역사가 재미있어지고, 역사를 알아야 철학이 보이고, 철학이 있어야 문학이 읽힙니다. 그리고 그 끝에 나의 삶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10년을 헤매다 겨우 찾은 순서입니다. 학계의 정설이 아니라 제가 정리한 틀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둡니다. 3부에서 5부까지가 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나이 먹고도 남 잘되는 꼴을 보면 배가 아프다는, 저의 민망한 고백도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림 0-1 이 책의 세 순서
그림 0-1 이 책의 세 순서 저자 도해

세 순서를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입니다. 아래가 위를 떠받친다. 밥이 생각을 떠받치고, 토대가 이상을 떠받치고, 땅이 역사를 떠받칩니다. 이 한 줄을 얻는 데 반백 년이 걸렸습니다.

그날 탕 속에서

그날 탕 속에서 저는 한참을 더 앉아 있었습니다. 1년 전의 좀비 같던 제 모습과, 그 문장이 걸어 들어온 그날 아침의 제 모습.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헤아려 보면서요. 헤아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이제부터 하나씩 꺼내 보겠습니다.

탕에 발을 담그듯, 가볍게 시작하셔도 됩니다.

물은 생각보다 따뜻합니다.

물은 생각보다 따뜻합니다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와 도해 34장은 연재 목록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eterhan.kr/blog/humanities/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19년째 전문가와 사업가, 임직원의 발표와 소통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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