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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을 외치던 코치의 아이러니

요약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2장에서 옮긴 글입니다. 20년 동안 긍정을 가르친 사람에게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름이 떨어진 차에 대고 힘내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도 저는 강의장에 서 있었습니다.

앞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고, 화면에는 제가 만든 장표가 떠 있습니다. 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같은 문제가 다르게 보인다고 말합니다. 당신 안에 이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 적고, 끝나면 잘 들었다는 인사를 하고 갑니다. 저는 그 일을 잘합니다. 20년 가까이 해 온 일이니까요. 그리고 밤이 되면, 앞 편에서 보신 그 사람이 됩니다.

이 간극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저는 몰랐습니다. 위선이라고 하면 조금, 아니 많이 억울합니다. 저는 낮에 제 입으로 한 말을 믿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강의장에서 없는 말을 지어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이 밤의 저에게는 한 발짝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남에게는 그렇게 잘 가 닿던 말이 저에게만 가 닿지 않았습니다.

남의 등을 밀어 주는 손은

직업이 되는 순간 그 말은 간판이 됩니다

긍정에 관한 저의 이력은 꽤 깁니다. 20대 후반에 저는 영어로 토론하는 자기계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만든 정도가 아니라 8년을 지속했습니다. 사람들을 모으고, 책을 같이 읽고, 서로의 목표를 응원하게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가장 자주 한 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할 수 있다. 태도가 전부다. 저는 그 말을 외치는 쪽이었습니다. 듣는 쪽이 아니라.

30대 중반부터는 그것이 아예 직업이 되었습니다. 코치라는 이름과 강사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들어가, 사람들의 소통과 설득과 성장을 이야기했습니다. 취미로 긍정을 말하는 사람과 직업으로 긍정을 말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직업이 되는 순간 그 말은 간판이 됩니다. 저는 긍정이 간판인 사람이었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한 가지는 밝혀 두겠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긍정은 무작정 좋게 보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낙관주의가 아니라 '현실적 낙관주의'였습니다. 순서가 있는 긍정이었습니다. 먼저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다음 그 일을 여러 관점에서 다시 본다. 마지막으로 그중 나에게 가장 유익한 해석을 고른다. 저는 이 순서를 믿었고 지금도 믿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것도 여러 번 봤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를 가르치던 사람이 밤마다 귓속의 소리와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그 순서를 가르치던 사람이

소통을 가르치는 사람이 소통을 끊은 셈입니다

그 사실을 자각한 날의 감정을 정확히 적어 두고 싶습니다. 부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슬픔도 아니었습니다. 화였습니다. 그것도 밖으로 나가는 화가 아니라 안으로 도는 화였습니다. 남들에게는 앞으로 가라고 그렇게 외쳐 놓고 나는 여기 멈춰 있구나. 20년 동안 남의 등을 밀어 주고 격려하면서 나 자신은 잘 격려하지 못했구나. 미워할 상대가 자기 자신뿐인 화는 갈 곳이 없어서 오래 남습니다.

물론 제가 연습하고 말해온 것을 저 자신에게도 적용했습니다. 20년 동안 연마한 기술을 전부 꺼냈습니다. 마음을 다잡았고, 상황을 다르게 보려 했고, 감사할 것을 찾아 적어 보기도 했습니다. 아침마다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머리가 무겁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자체가 피곤했습니다. 밤에는 다시 소리였습니다. 방법이나 기술이 모자랐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같은 방법과 기술로 다른 사람들은 실제로 좋아졌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문을 닫았습니다.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일과 상관없는 자리에는 나가지 않았고, 온라인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소통을 가르치는 사람이 소통을 끊은 셈입니다. 아이러니 위에 아이러니를 한 층 더 쌓았습니다.

닫은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말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긍정을 가르치는 사람이 요즘 무너져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난처해집니다. 위로를 해야 할지 못 들은 척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저도 제가 그 말을 왜 꺼내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쪽을 골랐습니다. 소통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자기 상태 하나를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 대목을 쓰면서도 저는 여전히 조금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하고 있는 일은 돌아갔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를 찾아 주는 곳이 꾸준했고, 강의장에서는 제 몫을 했습니다. 겉에서 보면 저는 멀쩡히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저를 더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전부 무너졌다면 차라리 문제라도 선명했을 겁니다. 겉의 온도와 속의 온도가 다른 상태에는 이름을 붙이기가 어렵습니다. 이름이 없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상태로 하루하루를 넘겼습니다.

겉의 온도와 속의 온도가 다른 상태

외침이 모자라서 차가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지금, 저는 긍정을 이렇게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긍정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긍정은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긍정을 생각으로만 하려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몸이 무너진 사람에게 생각으로 만드는 긍정은, 기름이 떨어진 차에 대고 힘내라고 외치며 악셀을 밟는 일과 같습니다. 외침이 모자라서 차가 안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이 없어서 안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 차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 단순한 사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계기판을 보는 대신 운전자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운전자를 더 몰아세웠습니다. 20년 동안 외치는 법은 연마했는데, 기름을 넣는 순서는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림 2-1 기름 떨어진 차에 힘내라고 외치기
그림 2-1 기름 떨어진 차에 힘내라고 외치기 저자 도해

사람에게는 그 눈금이 없습니다

자동차에는 연료 눈금이 있습니다. 바늘이 아래로 내려가면 누구나 압니다. 아, 넣어야겠구나. 그런데 사람에게는 그 눈금이 없습니다. 몸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계기판이 없으니 저는 그것을 성격 문제나 의지박약의 문제로 읽었습니다. 요즘 내가 예민하다. 의지가 약해졌다. 나이를 먹어서 그렇다. 30년 동안 그렇게 읽었습니다. 눈금이 없으면 대신 읽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저는 50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잠이 그렇고, 아침의 기분이 그렇고, 먹고 난 뒤의 몸 상태가 그렇습니다.

제 말이 왜 남에게는 가 닿고 저에게는 가 닿지 않았는지, 그 전부를 저는 지금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남의 일에는 거리가 있어서 더 잘 보이는 면도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기도 할 겁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한 조각뿐입니다. 저에게는 말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아래층이 비어 있었다는 것.

혹시 비슷한 시절을 지나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비슷한 시절을 지나신 적이 있습니까. 겉으로는 굴러가는데 속으로는 멈춰 있던 시절 말입니다. 남에게 해 주는 조언은 그렇게 잘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그 조언을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시절.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와 도해 34장은 연재 목록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eterhan.kr/blog/humanities/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19년째 전문가와 사업가, 임직원의 발표와 소통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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