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1장에서 두 이야기를 골라 옮긴 글입니다. 50이 넘어 귓속 소리 때문에 잠을 잃은 밤들, 그리고 그 밤이 오기까지의 30년입니다. 몸은 그 자리에서 청구하지 않습니다. 30년 뒤에 이자를 붙여 청구합니다.
불을 끄고 눕습니다. 눈을 감습니다. 그러면 시작됩니다.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설명하려는 시도를 저는 여러 번 했고,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비슷한 소리를 찾아 빗대어 보아도 듣는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소리는 세상에 없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제 머릿속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이명이라고 부릅니다.
이명의 잔인함은 소리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에 있습니다. 낮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합니다. 세상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차 소리, 말소리, 키보드 소리가 그 소리를 덮어 줍니다. 문제는 밤입니다. 세상이 조용해지는 만큼 그 소리는 커집니다. 하루 중 가장 지쳐 있는 시간, 가장 쉬어야 하는 시간에 소리는 가장 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명은 정확히 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병입니다.

그 밤들에 저는 제가 모르는 저를 만났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것과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고 싶었습니다. 간절하게 자고 싶었습니다. 몸은 무너지기 직전인데, 눈을 감으면 소리가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렇게 매일 밤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깨어나면 소리는 체감상 두 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밤새 소리와 싸우다 진 사람에게 아침은 상으로 더 큰 소리를 주었습니다.
어떤 밤에는 밤새 욕을 했습니다. 점잖은 표현으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겠습니다. 욕을 했습니다. 한숨을 쉬고, 뒤척이고, 다시 욕을 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욕인지도 모르는 욕이었습니다. 소리에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제 몸에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인생에게 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 날들이 이어지면, 사람은 자기가 알던 자기가 아니게 됩니다. 저는 그 밤들에 제가 모르는 저를 여러 번 만났습니다. 정신과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은 것도 그 무렵입니다. 그때 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물어보러 가는 것이 맞았습니다. 힘드신 분이 이 대목을 읽고 계시다면, 저처럼 미루지 마시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느 밤, 그 생각이 왔습니다.
이 소리가 평생 계속된다면. 아니,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커진다면. 나는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문장을 끝까지 쓰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문장의 앞부분을 떠올렸다는 것만 적어 두겠습니다. 50이 넘도록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그 문장을 끝까지 가지 못하게 막아선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적어 두겠습니다.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었습니다. 철학도 아니었고, 긍정적인 사고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얼굴들이었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 부모님의 얼굴과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래서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남았습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상태. 사람들은 그 상태를 바닥이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11월 말이었습니다. 그 밤이 갑자기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3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귀는 그때부터 이미 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의 저는 자기계발에 진심인 청년이었습니다. 10대 때는 말도 못하게 허약했습니다. 근육량이 너무 없어서 공 하나를 제대로 못 던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저는 운 좋게도(?)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에서 몸을 만들었고, 틈나는 대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제대한 뒤에는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어를 매일같이 훈련했습니다. 듣고, 따라 하고, 또 듣고.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귀를 혹사했습니다. 귀가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이어폰으로 영어를 계속 들으며 연습했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젊었으니까요. 몸이 뭐라고 하든 의지가 이긴다고 믿던 나이였습니다. 그 영어가 저를 대기업에 넣어 주었고, 나중에 영어로 하는 자기계발 모임을 8년이나 이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때의 저를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50이 넘어 생긴 이명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때의 혹사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학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30년 뒤에 청구서가 온 것 같다는 스스로의 짐작입니다. 귀는 그때부터 이미 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귀에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이 우스운데, 정확히 그랬습니다.

소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코로나 시기였습니다. 강의가 전부 화면 속으로 들어갔고, 저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말 무리해서 일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히려 코로나 때 일이 더 많았습니다. 화면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헤드셋을 낀 채 몇 시간을 내리 말했습니다. 잘못 설정된 참가자의 큰 목소리나 소음도 노필터로 들었습니다. 쉬는 시간까지 반납해 가며 달렸습니다. 온라인 수업 노하우를 무료로 나누는 일까지 했습니다. 주중 주말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여. 귓속에서 작은 소리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신경 쓰면 들리고 잊으면 안 들리는 정도. 그래도 빨리 진찰받는 게 좋다고 하길래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이 대수롭지 않게 약간의 난청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환자에 비해 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시더군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니, 어쩌다 보니, 할 일에 집중하다 보니… 저는 잊는 쪽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견뎠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가을, 유난히 강의가 몰린 두 달을 무리해서 소화한 뒤에 소리가 갑자기 커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소리는 제 컨디션 전체를 끌어내렸습니다. 낮에는 머리가 무겁고, 대화 자체가 피곤했습니다. 일과 관계없는 만남은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저는 거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은둔에 가까운 시간이 시작됐고, 그 끝에 11월 말의 밤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명은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명 치료를 위해 제가 한 일을 적으면 목록이 깁니다. 침을 맞았고, 한약을 지었고, 뇌파 훈련을 받았고, 체질 진단을 다시 받았고, 이름도 낯선 여러 기계들을 써 봤습니다. 큰돈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이명 치료로 몇천만 원을 썼다는 글을 꽤 보았는데, 제가 그러고 있더군요. 다양한 노력의 결과, 뇌가 착각하고 있는 그 소리는 그대로였습니다. 어느 치료가 조금은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명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명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버티는 몸이 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몇 장이 남았습니다.
이명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저는 지금도 모릅니다. 스무 살의 혹사와 40대 후반의 과로가 겹쳤다고 짐작할 뿐이고, 의사도 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확답이라면, 한 유명한 전문의께서 그냥 '안고 사셔라'고 해 주신 말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모르는 것입니다. 앞으로 장마다 하나씩 나올 겁니다.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질문 하나 드립니다. 당신의 몸이 오래전부터 보내 온 신호 가운데, 못 들은 척해 온 것이 있습니까. 저에게는 귀였습니다. 30년 동안 말하고 있었는데, 밤에 잠을 빼앗기고 나서야 들었습니다.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와 도해 34장은 연재 목록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eterhan.kr/blog/huma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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