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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터 다시 세운 1년 — 4층 건물

요약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5장에서 옮긴 글입니다. 바닥을 찍은 뒤 1년, 저는 제 몸으로 실험을 했고 순서 넷을 얻었습니다. 음식, 운동, 감정, 생각입니다. 건물은 아래층부터 짓는데, 저는 20년 동안 4층부터 지으려 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저는 샤워기 손잡이를 찬물 쪽으로 끝까지 돌렸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습니다. 군대를 제외하고는 늘 따뜻한 물로 씻어 온 사람이라 몸이 먼저 반항했습니다. 그래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한번 해 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군대 이후로 한여름을 빼고는 거의 처음 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샤워기 손잡이를 찬물 쪽으로 끝까지 돌렸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몸에 관한 답을 전부 밖에서 얻었습니다. 책 1장에 적은 치료 목록이 그 영수증입니다. 돈은 나갔고 소리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다 방식을 바꿨습니다. 답을 사 오는 대신, 가이드라인 하나를 얻어서 제가 직접 해 보기로 했습니다. 스스로 '몸의 실험'이라고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이전까지 저는 제 몸을 남에게 맡기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때부터는 바꾸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찬물 샤워는 그 실험의 첫 항목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난해 11월 말에 바닥을 찍고, 올해 상반기에 저는 제 몸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이 글은 그 기록입니다. 올해 6월 말, 저는 일기에 이런 문장을 적었습니다.

"우선순위는 건강이다. 건강에도 3단계가 있다. 1 신체 2 감정 3 생각."

이 문장이 제 손으로 처음 정리된 순서입니다. 실험을 하면서 여기에 한 칸이 더 생겼습니다. 맨 앞의 신체가 둘로 쪼개졌습니다. 음식과 운동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순서는 넷입니다. 음식, 운동, 감정, 생각.

20년 동안 4층 전문 시공업자로 살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4층 건물로 생각합니다. 1층이 음식, 2층이 운동, 3층이 감정, 4층이 생각입니다. 건물은 아래층부터 짓습니다. 당연한 말인데 저는 4층부터 지으려 했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정신력으로 버텨라. 생각을 바꿔라. 전부 4층 공사 이야기입니다. 저는 20년 동안 4층 전문 시공업자로 살았습니다.

그림 5-1 4층 건물
그림 5-1 4층 건물 저자 도해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1층부터 가겠습니다. 먼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몸이 망가진 사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무너지기 직전의 제가 열심히 찾아 먹었던 식단을 공개하면 고기, 장어, 마늘, 삼계탕, 추어탕입니다. 목록만 보면 아시겠지만 전부 보양식입니다. 기력이 떨어질수록 저는 더 부지런히 챙겨 먹었습니다. 그 시절이 제 몸이 가장 나빴던 시절입니다. 전환점은 팔체질 한의학과의 재회에서 왔습니다. 10여 년 전에 한 번 접했을 때는 지금과 다른 체질로 나왔고 효과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났을 때 제 태도는 반신반의에 가까웠습니다. 이번에 들은 이야기는 간단했습니다. 저는 상체에 열이 많이 올라오는 타입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보양식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개 열을 올리는 쪽이라고도 했습니다. 뜨거운 물 샤워와 사우나, 땀을 쫙 빼는 운동도 저에게는 안 맞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건강 관리라는 이름으로 성실하게 해 오던 목록과 정확히 겹쳤습니다.

세 가지를 미리 적어 두겠습니다. 첫째, 팔체질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둘째, 제 회복이 그 방법 덕인지, 여러 변화가 겹친 결과인지, 우연이 얼마나 섞였는지 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셋째, 그럼에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가려 먹기 시작하고 운동 뒤에 찬물로 씻기 시작하자, 석 달이 채 되기 전에 컨디션이 달라졌습니다. 이명은 그대로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소리가 아니라 소리를 견디는 몸이었습니다. 참고한 가이드라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비타민C 메가도스에 관한 영상과 책의 이야기였는데, 여기에도 위의 세 문장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저는 좋다고 하는 것을 의심하면서도 '몸의 실험'을 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경과는 꽤 좋습니다.

달라진 것은 소리가 아니라

열심히 말고, 꾸준히

2층은 운동입니다. 저는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홈트레이닝을 오래 했고, 무너지기 전에도 달리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것도 열심히요. 제 체질 해석을 보면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나옵니다. 그러니 제가 무너진 것은 운동 부족의 결과가 아닙니다. 문제는 양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제 운동에는 늘 '열심히'가 붙어 있었습니다. 더 오래, 더 세게, 더 자주. 열여덟의 사당오락과 같은 문법입니다. 그래서 원칙을 한 줄로 바꿨습니다. 열심히 말고, 꾸준히. 가벼운 무게로 12번씩 세 세트. 계획표에 몇 주 차에 몇 킬로그램이라는 진도를 적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상하게 힘이 남는 날에만 조금 더 들었습니다. 몸이 먼저 청하면 응하고, 청하지 않으면 조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처음 들던 무게보다 30~40퍼센트 무거운 중량을 들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수치는 아닙니다. 제가 눈여겨보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진 방식입니다.

열심히는 몸을 이기려 든다

3층은 감정입니다. 이 층에서 제가 찾은 것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운동, 그리고 좋은 관계. 적당히 달리고 나면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좋은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여기서 적당히는 그때 그때 다릅니다.) 좋은 생각이 아니라 좋은 감정입니다. 무엇을 깨닫거나 결심한 것이 아니라, 그냥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20년 동안 생각으로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애쓰던 사람이 30분을 달리고 그것을 공짜로 받았습니다. 도파민이니 테스토스테론이니 하는 이름들이 이 뒤에 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니 기전을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관계 쪽은 제가 연 것이 아닙니다. 문을 닫고 지내는 동안에도 저를 잊지 않고 연락해 준 사람이 몇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돌아보면 제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게 붙잡아 준 절반이 그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덧붙이겠습니다. 마음의 어려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몸을 돌보는 것만으로 건너지 못하는 강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게으름은 죄목이 아니라 오진이었습니다

4층이 생각입니다. 무너져 있던 시절의 제 저녁은 늘 같았습니다. 하겠다고 책상에 앉습니다. 몸이 피곤합니다. 피곤하니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이 나쁘니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튜브를 봅니다. 지식과 정보가 담긴 유튜브만 골라서 보는 거니까 유용한 공부를 하는 거라고 자위합니다. 몇 시간이 갑니다. 일도 못 했고 쉬지도 못했습니다. 잠들면서 자책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가. 그런데 되감아 보면 유튜브를 멍하니 보고 있는 장면은 맨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그 앞에 하기 싫음이 있고, 그 앞에 기분 나쁨이 있고, 맨 앞에 몸의 피곤이 있습니다. 게으름은 죄목이 아니라 오진이었습니다. 요즘의 저는 앉기 전에 점검부터 합니다. 지금 비어 있는 층이 어디인가. 몸이면 온전히 쉬거나 잡니다. 감정이면 움직이거나 사람을 만납니다. 그렇게 아래를 채운 다음에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짭니다. 인공지능과 마주 앉는 시간은 맨 뒤에 둡니다. 방향이 정립된 사람에게 AI라는 도구는 날개가 됩니다. 그러나 방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유튜브가 되기 쉬웠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그림 5-2 예전 하루, 지금 하루
그림 5-2 예전 하루, 지금 하루 저자 도해

이 글에서 제가 모르는 것도 적어 두겠습니다. 이 네 층의 순서가 누구에게나 같은 순서인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한 사람에게서만 확인했고, 그 한 사람이 접니다. 층의 개수가 다른 분도 계실 겁니다. 이것은 처방전이 아니라 실험 보고서입니다.

당신은 지금 몇 층에 에너지를 쓰고 계십니까

다만 질문 하나는 누구에게나 물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지금 몇 층에 에너지를 쓰고 계십니까. 혹시 저처럼 1층이 비어 있는 채로 4층에서 야근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이 글은 전자책 『나로부터 시작하는 인문학』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와 도해 34장은 연재 목록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eterhan.kr/blog/humanities/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19년째 전문가와 사업가, 임직원의 발표와 소통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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