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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이 높아지면 말도 간결해집니다 — 충분히 아는 사람만 뺄 수 있습니다

요약 충분히 아는 사람은 간결하게 말합니다. 20분을 5분으로 못 줄이는 것은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아직 인과관계가 정리되지 않아서입니다. 길은 셋입니다. 먼저 전부 늘어놓고, 인과로 꿰고, 거기서 한 문장을 뽑습니다.

코칭에서 제가 자주 하는 요청이 있습니다. 방금 20분 동안 설명하신 것을 5분으로 줄여서 다시 해 달라고 합니다. 4분의 1입니다.

이 요청을 받으면 반응이 둘로 갈립니다. 한쪽은 머뭇거리기는 해도 곧바로 시작합니다. 어디를 버릴지 이미 알고 있는 분들입니다. 다른 쪽은 많이 당황해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5분으로는 좀 어려운데요. 이게 다 필요한 내용이라서요."

저는 두 번째 반응을 아주 많이 봤습니다. 제가 왜 굳이 5분이라고 하는지는 글 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20분 설명을 즉석에서 5분으로 줄인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 새로 배운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 무엇을 했는지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5분으로 줄여 보시겠습니까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슬라이드를 줄이라는 피드백을 받고 파일을 열어 봤는데 뺄 게 없습니다. 결국 글자 크기만 줄여서 장수를 맞춥니다. 발표가 30분에서 15분으로 줄었다는 연락을 받고는 앞부분을 빨리 넘기기로 하고 들어갔다가, 뒤에서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런데. 두 장면은 같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빼면 부실해 보일 거라는 두려움입니다. 저는 이걸 빠뜨림 공포라고 부릅니다.

저는 20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코칭했습니다. 고객사는 140여 곳이고 그중 32개사가 포춘 500대 기업입니다. 그러면 말하기 훈련을 더 하라는 얘기겠구나 싶으실 겁니다. 아닙니다. 손댈 곳은 내용 쪽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지금 자기가 어디쯤 와 있는지 재는 기준 하나를 들고 나가게 됩니다.

복잡하게 말하는 것이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회의실에는 암묵적 규칙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길게 말하면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읽힙니다. 자료가 30장이면 성의가 있어 보이고 10장이면 좀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넣습니다. 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넣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내용을 아주 깊이 알고 있다면, 장황하게 말하게 될까요, 핵심만 찍어서 말하게 될까요. 주제를 꿰뚫은 사람은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말하고 있다면 아직 재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충분히 아는 사람은 간결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안다"는 말은 너무 두루뭉술합니다. 네 단계로 나눠 보겠습니다. 1단계는 자료를 보면서 설명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자료 없이 설명할 수 있는 단계인데, 말은 나오지만 준비한 순서대로만 나옵니다. 3단계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옆길로 새도 돌아옵니다. 4단계는 순서를 바꿔서, 길이를 바꿔서 말할 수 있는 단계입니다.

대부분의 발표 준비는 2단계에서 끝납니다. 외우고 나면 준비가 끝났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전은 3단계와 4단계에서 갈립니다. 앞에서 5분으로 줄이지 못한 분들은 2단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준비는 2단계에서 끝납니다

외우는 데서 멈추면 2단계입니다

한 대기업의 CTO를 코칭한 일이 있습니다. 복잡한 구조를 로직 순서대로 담아 두고, 앞에서부터 쌓아 결론은 맨 뒤에 놓는 분이었습니다. 단계마다 세부를 빠뜨리지 않으려니 설명이 길어지고, 시간이 밀리는 게 느껴지니 말은 더 빨라졌습니다. 듣는 사람 가운데에는 기술자가 아닌 분들이 있었습니다.

2단계까지는 완벽한 준비였습니다. 자료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순서 하나로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외운 것은 순서를 바꾸면 무너집니다.

그분에게 필요했던 것은 내용을 더 아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어느 마디까지 필요한지를 미리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선이 정해지자 다 말할 이유가 없어졌고, 서두를 일도 없어졌습니다. 천천히 말하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분량이 줄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2단계에서 3단계로 가는 방법이 더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더 외우면 2단계가 강화될 뿐입니다. 3단계로 가는 방법은 자기가 자기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것 하나입니다.

"왜 하필 이 방법입니까?" / "다른 방법은 검토 안 하셨습니까?" / "이게 안 되면 어떻게 됩니까?" / "그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막히는 데가 있으면 거기가 아직 설익은 곳입니다. 실전에서 질문이 들어오는 곳도 대개 거기입니다. 네 질문에 답이 되면 3단계이고, 3단계가 되면 4단계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재료를 다 쥐고 있어서 순서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아는 사람은 간결하게 말합니다.

늘어놓고, 인과로 꿰고, 한 문장을 뽑습니다

4단계로 올라가는 길은 셋입니다. 첫째, 먼저 전부 늘어놓습니다. 줄이는 이야기를 하는데 늘어놓으라니 이상하시겠지만 순서가 그렇습니다. 안 보이는 것은 줄일 수 없습니다. 종이든 슬라이드든, 이 단계에서는 양이 많아야 합니다.

둘째, 늘어놓은 항목을 나열 순서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로 이어 봅니다. 이렇게 이어진 것을 저는 체인이라고 부릅니다. 체인에 안 걸리는 항목은 안 넣어도 되는 항목입니다. 뺄 것을 감으로 고르는 게 아니라 구조가 알려 줍니다. 연결어도 저절로 나옵니다.

셋째, 체인에서 한 문장을 뽑습니다. 그게 원메시지입니다. 요약은 내용을 줄인 것이고, 원메시지는 체인 전체가 결국 하려는 말 한마디입니다. 이게 나오면 5분에도 되고 20분에도 됩니다.

앞에서 미뤄 둔 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반도체 쪽에서 오신 분이었고, 처음 20분 설명은 나열형이었습니다. 적층 구조, 인터커넥트, 대역폭, 전력, 발열, 원가. 항목마다 정확했고, 다 필요했고, 5분으로는 못 줄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앞 편에서 함께 만든 창고 비유로 체인을 다시 꿰니 이렇게 됐습니다.

"프로세서가 일을 못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늘고 있었습니다. 원인은 창고였습니다. 메모리가 길 건너에 있고 오가는 문이 좁았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공장 옆에 붙이고 문을 1,024개로 늘렸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고 처리량이 늘었습니다. 다만 열이 한곳에 몰리고 값이 비쌉니다. 그래서 지금 보고 있는 게 발열과 원가입니다."

상황, 원인, 조치, 결과, 남은 문제. 다섯 마디입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1분이 안 됩니다. 마디만 말하면 5분이 되고, 마디마다 숫자와 근거를 붙이면 20분이 됩니다. 뺀 것은 세부 규격과 전력 계산이었습니다. 체인의 어느 마디에도 걸리지 않았으니, 질문이 들어오면 그때 꺼내면 됩니다.

그분은 그날 4단계로 올라갔습니다. 새로 배운 것은 없었습니다. 순서만 바꿨습니다.

체인에 안 걸리면 빼도 됩니다

자세히 안 쓰면 안 되는 조직이 많다는 말씀은 맞습니다. 다만 문서는 발표자 없이 혼자 읽히니 조건과 예외가 다 들어가야 합니다. 말할 때는 당신이 거기 있습니다. 30장을 그대로 읽지 마십시오. 그 30장을 요약하는 첫 5분이 당신 몫입니다.

저도 길게 말해서 덮었습니다

이 말이 뼈아프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 역시 길게 말하는 것으로 부족함을 덮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 아는 것처럼 보이려고 아는 것을 다 꺼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랫동안 못 줄이는 것을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분량이 많아서라고 봤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370년쯤 전에 파스칼이 쓴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 편지가 길어진 것은 짧게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요. 긴 것은 재료를 그대로 내보낸 것이고, 짧은 것은 한 번 더 들여다본 뒤에야 나옵니다.

"5분으로는 좀 어려운데요. 이게 다 필요한 내용이라서요."

이 말이 이제 다르게 들리실 겁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직 인과관계의 정리가 안 됐다는 말입니다. 시간 이야기로 하신 말이지만, 가장 정확한 자기 진단입니다.

당신은 몇 단계입니까

자료를 봐야 말이 나오는 분. 1단계입니다. 아직 외우기 전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다만 외우는 데서 멈추지 마시고, 외운 뒤에 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십시오.

자료 없이도 되는데 순서가 바뀌면 무너지는 분. 2단계입니다. 가장 많은 분들이 여기 계십니다. 더 외우지 마시고 체인을 그리십시오. 그것만으로 3단계가 됩니다.

질문은 받는데 시간이 줄면 당황하는 분. 3단계입니다. 거의 다 오셨습니다. 원메시지 한 문장만 뽑으시면 4단계입니다.

어느 단계든 다음 단계로 가는 길은 같습니다. 내용을 한 번 더 보는 것입니다. 질문은 하나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발표를 절반 시간으로 하라면, 어디를 버리시겠습니까.

30초 실천

우선은 지금 진행 중인 일 하나를 떠올리고, 이 형식으로 세 마디만 만들어 보십시오.

"이래서 → 이렇게 됐고 → 그래서 이걸 하려고 합니다."

조건도 예외도 붙이지 마십시오. 만들어지면 그 일은 이미 정리된 겁니다. 안 되면 첫 마디만 적으십시오. "이래서"까지만 나와도 체인의 첫 고리는 걸린 겁니다.

세 마디만 적어 보십시오

5분으로 줄여 보라고 하는 이유

글 머리에서 약속한 대목입니다. 제가 5분으로 줄여 보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몇 단계에 있는지 알려 주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진단을 좋아합니다. 못 줄인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한 번 더 보는 일은 그분들이 원래 잘하는 일입니다. 전문가니까요.

체인을 어디서부터 풀어놓느냐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적겠습니다.


간결하게 말하는 것은 말하기 기술이 아닙니다. 이해가 한 단계 올라갔다는 증거입니다.

충분히 아는 사람은 간결하게 말합니다.

이 글은 전자책 『다 말하지 마세요』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는 스마트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smartstore.naver.com/petercomm/products/13788987324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19년째 전문가와 사업가, 임직원의 발표와 소통을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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