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영어 탓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어로 정리가 안 된 것은 영어로는 더 안 됩니다. 영어로 향한 부담의 절반은 정리의 문제입니다. 고칠 곳은 두 군데입니다. 문장과 멈춤. 단어는 하나도 더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회사의 핵심인재 두 분을 코칭한 적이 있습니다. 아시아퍼시픽 지역의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한국 쪽 성공 사례를 15분 동안 발표해야 했습니다. 전 세계 현지 법인의 임원진이 모이는 행사였습니다. 두 분 다 업무도 회의도 영어로 하는 분들이었는데 부담이 굉장히 컸습니다.
그리고 부담은 전부 영어로 향해 있었습니다. 영어 표현을 더 찾고, 문장을 더 다듬고, 대본을 더 외우려고 하셨습니다.
두 분이 그 컨퍼런스에서 어떻게 됐는지는 글 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에서 가져가실 것은 영어에서 고칠 곳 두 군데입니다.

영어로 말할 일정이 잡히면 표현을 다듬느라 밤을 새우고도, 정작 무엇을 뺄지는 못 정한 채 아침을 맞습니다. 또는 그 발표를 다른 사람에게 넘깁니다. 그러면 그 무대에서 조직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뀝니다. 두 장면 다 영어 실력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저는 20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코칭했고, 고객사 140여 곳 가운데에는 회의와 보고를 영어로 하는 조직이 많습니다. 영어 발표 글이니 표현을 몇 개 알려 주겠구나 싶으실 겁니다. 아닙니다. 단어는 하나도 더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다음 영어 발표에서 손댈 두 군데가 정해집니다.
영어 탓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두 분의 발표는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 발표였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와 고객사의 복잡한 요구사항이 무엇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개선되었는지를 15분 안에 설명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어디서 시작할지, 어떤 숫자를 남길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영어 실력이 아니라 내용 정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부담은 전부 영어로 향해 있었습니다. 영어는 노력할 곳이 눈에 보이고 "무엇을 뺄까"는 노력할 곳이 안 보이니, 보이는 쪽에 힘을 씁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정리가 안 된 것은 영어로는 더 안 됩니다.
영어에서는 남의 지표로 자기를 재는 일이 특히 심합니다. 그런데 그 컨퍼런스 방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싱가포르, 대만, 일본, 독일, 이스라엘에서 왔습니다. 대부분 비원어민입니다.
세계로 넓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약 15억 명이고 그중 모어로 쓰는 사람은 약 4억 명입니다. 나머지 11억 명은 그 두 분과 같은 조건입니다. 넷 중 셋입니다. 그 사람들끼리 하는 회의에서 통하는 영어는 짧고 또렷하고 구조가 분명한 영어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다시 잡으셔야 합니다.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게 말하는 것입니다. 원어민처럼 말하려면 끝이 없지만, 알아듣게 말하는 데는 몇 가지만 고치면 됩니다.
영어 탓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문장이 짧아져야 멈출 곳이 생깁니다
제가 영어 훈련 과정에서 다루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문법 전체를 다시 보지 않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필요한 것만 봅니다. 문장과 멈춤, 두 군데이고 고치는 순서도 이 순서입니다.
하나는 문장입니다. 영어에서 진짜 동사는 절마다 하나뿐이니, 동사를 하나만 쓰면 짧은 문장이 됩니다. 관계대명사와 접속사로 길게 이으면 중간에서 막혔을 때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 "The main issue that we found during the analysis, which was conducted last quarter, is that…" ○ "We found one issue. The analysis was last quarter. Here it is."
아래쪽이 유치해 보이십니까. 회의실에서는 아래쪽이 훨씬 더 환영받습니다. 비원어민 청중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어려운 말도 쉬운 말로 바꾸십시오. scrutinize 대신 look at, in the event that 대신 if.
결론을 먼저 놓는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어는 배경을 깔고 마지막에 핵심을 두지만 영어는 반대입니다. "늦었으니까 가야 할 것 같아"가 아니라 "I think we should go because it's late"입니다. 결론 다음에 조건과 이유를 붙이는 순서가 영어에서 더 잘 맞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둘은 멈춤입니다. 한국어 발표라면 3초 이상 쉬라고 말씀드리지만 영어에는 그대로 쓰면 안 됩니다. 비원어민은 이미 더 자주, 더 길게 멈추는데 그 멈춤이 단어 중간과 구절 중간에서 납니다. 머릿속에서 단어를 검색하는 순간이라서 저는 이것을 검색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청중은 "막혔구나"로 읽습니다.
같은 길이의 침묵을 의미 덩어리 끝으로 옮기면 전략적 침묵이 됩니다. 아무 소리 없이, 시선은 청중을 향한 채. 청중은 "생각할 시간을 주는구나"로 읽습니다. 침묵을 늘리지 말고 옮기십시오. 총 멈춤 시간이 같아도 위치만 바꾸면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옮기는 방법은 대본에 표시하는 것입니다. 영어는 3~7단어짜리 덩어리로 말합니다. 덩어리 끝에는 짧은 멈춤을, 마침표에는 긴 멈춤을, 정말 중요한 문장 뒤에는 2~3초를 표시합니다.
"Today / I'd like to share three findings. // The first one / is about cost. ///"
끊는 곳은 주어 덩어리 뒤, 접속사와 전치사구 앞, 그리고 마침표마다입니다.

오늘 회의에서 바로 쓰는 것 세 가지
두 군데를 고치는 데는 몇 주가 걸립니다. 그 전에 오늘 쓸 수 있는 것을 드리겠습니다.
하나, 막혔을 때 돌아갈 문장입니다. 막히면 대부분 침묵하거나 "um"을 씁니다. "Let me put it another way." "The point is simple." "In short —" 이런 문장을 두세 개 준비해 두십시오. 말하는 동안 다음 문장이 정리되고, 듣는 사람에게는 정리해서 다시 말하려는 것으로 들립니다.
둘, 숫자와 고유명사는 특히 또렷하게 말합니다. 듣는 사람이 맥락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이 그 둘입니다. "eighty"와 "eighteen", "fifteen"과 "fifty"는 비원어민끼리 자주 어긋납니다. 이것만 천천히 또박또박, 나머지는 평소 속도로 하셔도 됩니다.
셋, 부정으로 물어도 사실대로 답합니다. "You don't like this plan?"에 한국어 습관대로 "네, 안 좋아합니다"라고 답하면 영어로는 "Yes"가 되고, 상대는 좋아한다고 알아듣습니다. 내가 그 행동을 하면 Yes, 안 하면 No입니다.
"그래도 표현이 부족한데요"라는 말씀은 맞습니다. 저도 부족합니다. 영어도 일본어도 원어민이 아니어서 디테일하게 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큰 그림과 흐름만 말했습니다. 그게 듣는 사람에게는 딱 맞았습니다. 표현이 부족한 문제는 더 외워서가 아니라 적게 써서 풉니다.
영어 탓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제 영어는 군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영어 탓으로 1년을 보낸 분이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 설득하는 일로 오래 먹고산 40대 영업 팀장이었는데, 해외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다가 문장 중간에서 멈췄습니다. 다음 문장이 나오지 않았고 진땀이 났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피했습니다. 이듬해 제 워크샵에서 같은 내용을 두 사람 앞, 네 사람 앞, 전체 앞에서 다시 발표했고, 마지막 발표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큰 박수를 쳤을 때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트라우마로 계속 갈 뻔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분이 1년 동안 피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자기 무대였습니다.
제 영어는 유학이나 어학연수가 아니라 군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카투사를 나왔냐면 아닙니다. 사실 지원했는데 떨어졌습니다.
포병이었던 저는 밤에 불침번을 서면서 두꺼운 포병 야전교범을 봐야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장비 사용 설명서입니다. 어느 날 대대 작전과에 같은 교범의 영어판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선임에게 물어서 가져왔고, 그날 밤부터 한국어판과 영어판을 나란히 놓고 읽었습니다. 이등병은 원래 공부할 짬이 아닌데 야전교범이라 허용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군대 매뉴얼에는 꾸미는 말이 없습니다. 단순하고 직설적인 문장이 하나씩 짝을 이룹니다. 짧은 문장, 한 문장에 동사 하나. 이 글에서 드리는 방법이 그때 제가 배운 방법입니다.
80년쯤 전에 처칠이 상을 받는 시상식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대체로 짧은 말이 가장 좋고, 오래된 말이 짧으면 그것이 제일 좋다고요. 영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도 같은 결론에 와 있었던 겁니다.
부담은 전부 영어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 문장이 이제 다르게 읽히실 겁니다. 영어가 부족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로도 아직 안 정리된 것을 영어 탓으로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영어는 어디서 막힙니까
단어가 안 떠올라 막히시는 분. 표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문장이 긴 겁니다. 한 문장에 동사 하나로 줄이면 필요한 단어가 절반으로 줍니다.
"um"이 자꾸 붙으시는 분. 멈추는 시간을 줄이려 하지 마시고, 검색 침묵을 의미 덩어리 끝의 전략적 침묵으로 옮기십시오. 같은 길이가 다르게 들립니다.
무대에서 머리가 하얘지시는 분. 영어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첫 30초를 영어로 외우고, 시간이 줄어도 버티는 7분 버전을 만드십시오.
질문은 하나입니다. 지난 영어 발표에서 막힌 곳은 단어였습니까, 멈춤이었습니까.
그리고 다음에 영어로 말해야 할 것 하나를 떠올려, 한국어로 세 마디를 만들어 보십시오.
"이래서 → 이렇게 됐고 → 그래서 이걸 하려고 합니다."
세 마디가 한국어로 안 만들어지면 영어로도 안 만들어집니다. 만들어졌으면 영어 단문 세 개로 옮기십시오. 관계대명사 없이, 접속사 없이, 한 문장에 동사 하나로요. 어려우면 첫 마디만 옮기셔도 됩니다. "We had a problem." 그 한 문장이 오늘의 발표문입니다.

두 분이 어떻게 됐는가
아시아퍼시픽 컨퍼런스로 돌아가겠습니다. 한 분은 그 컨퍼런스에서 어워드를 받았다고 했고, 다른 한 분은 나중에 승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 두 분 덕분에 '한국'이라는 조직이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회사에서 각 나라 조직은 매년 평가받고, 그 평가의 상당 부분이 이런 무대에서 만들어집니다. 같은 성과를 내고도 한 조직은 인정받고 다른 조직은 못 받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사람이 그 방에 서 있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두 분이 그날 새로 배운 영어 표현은 없었습니다. 뺀 것이 있었고, 짧아진 문장이 있었고, 옮겨진 침묵의 위치가 있었습니다.
자료도 번역도 AI가 해 주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말할 이유가 남아 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적겠습니다.
영어는 하루아침에 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장과 멈춤은 다음 주에 손댈 수 있습니다.
영어 탓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은 전자책 『다 말하지 마세요』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는 스마트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smartstore.naver.com/petercomm/products/13788987324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