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침묵이 먼저입니다. "어, 음, 이제"를 없애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채움말은 목적이 있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멈춰도 되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접속사 뒤, 중요한 내용 뒤, 질문 뒤.
한 스타트업의 CTO를 코칭한 일이 있습니다. 투자자 미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기술은 탄탄했고, 본인도 그 기술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문제는 5분 피칭을 녹화해서 함께 봤을 때 드러났습니다. "이제"가 27번이었습니다. 5분은 300초입니다. 11초에 한 번꼴입니다. 본인은 세 번쯤 한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제"가 나오는 곳은 전부 같았습니다. 문장이 끝나고 다음 문장이 시작되기 전. 침묵이 들어갈 곳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워크샵에서 제가 자주 하는 실습이 있습니다. 두 분에게 같은 주제로 2분씩 말하게 하고, 한 분에게만 조건을 붙입니다. "'어'나 '음' 소리를 한 번도 내지 않도록 해 보세요." 그분은 끝나고 나면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런데 듣고 있던 분들의 평가는 다릅니다. 대부분 아까보다 더 잘했다고 합니다. 판단이 정반대로 나옵니다. 왜 그런지는 글 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에게도 사람들 앞에 서게 된 첫 무대가 있습니다. 제가 고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하겠습니다.
조용한 분들이 말하는 약점은 둘입니다. 말이 느리다, 힘이 없어 보인다. 말이 잘 나오는 분의 고민은 반대쪽입니다. 장황해진다, 두서가 없어진다.
그런데. 느린 것도 빠른 것도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장 사이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저는 20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코칭했습니다. 고객사는 140여 곳이고 그중 32개사가 포춘 500대 기업입니다. 그러면 말버릇을 고치라는 얘기겠구나 싶으실 겁니다. 아닙니다. 없애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꿔 넣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자기 채움말을 찾아내는 질문 하나와, 멈춰도 되는 곳 세 군데를 가져가시게 됩니다.
채움말은 없애지 않고 바꿔 넣습니다
"어, 음"을 없애라는 조언은 다들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채움말은 목적이 있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 하고 소리를 내는 이유는 말버릇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아직 내 말이 안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소리를 멈추면 상대가 끼어들 것 같으니까요.
그러니 없애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대신 넣을 것이 침묵입니다. 침묵도 똑같이 말할 차례를 지켜 줍니다. 오히려 소리보다 더 잘 지켜 줍니다. 멈춤은 다음 말이 온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말이 빠른 분에게 침묵은 다른 일을 합니다. 쉼 없이 이어 가면 한 문장을 더 붙이고, 붙인 문장이 또 설명을 부릅니다. 3초를 비우면 그 체인이 끊깁니다.
그런데 채움말은 "어"와 "음"만이 아닙니다. 그 둘은 오히려 알아채기 쉬운 편입니다. 정말 자주 나오는 것은 단어처럼 생긴 것들입니다. "이제", "사실", "약간", "~인 것 같습니다", "뭐". 뜻이 없는데 단어와 같은 형태라서 자기 것은 자기가 제일 못 듣습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제가 말할 때 자꾸 붙이는 말습관이 있나요?" 같은 팀 사람은 대부분 바로 대답합니다. 그 한 단어가 오늘 바꿀 목표입니다.
그 CTO가 바꾼 것도 하나였습니다. "이제"가 나오려는 순간 입을 다물고, 속으로 셋을 세고, 다음 문장을 시작하는 것. 내용도 슬라이드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일주일 뒤 "이제"는 네 번이었고, 5분이 4분 20초로 줄었습니다. 빠진 40초는 전부 채움말이었습니다. 실제 투자자 미팅이 끝나고 한 투자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이네요."
확신이 늘어난 게 아닙니다. 확신을 가리고 있던 소리가 빠진 것입니다.
침묵이 먼저입니다.

멈춰도 되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아무 데서나 멈추면 어색합니다. 멈추기 좋은 곳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 접속사 뒤. "매출은 늘었습니다. 그런데 (멈춤) 마진은 줄었습니다." 접속사는 방향이 바뀐다는 예고입니다. 예고 다음에 잠깐 비면 듣는 사람이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원래 채움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어…" 하는 바로 거기요.
둘, 중요한 내용 뒤. "이번 분기 이탈률은 8.2퍼센트입니다. (멈춤) 작년 같은 기간의 두 배가 조금 안 됩니다." 숫자를 말하고 바로 넘어가면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그냥 흘러 지나갑니다. 앞 순번의 그 기술 트레이너에게 가장 필요했던 곳이 여기였습니다. 그분은 조용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침묵은 조용한 발표자만의 도구가 아닙니다.
셋, 질문 뒤. 가장 어렵고 효과가 가장 큰 곳입니다. 질문을 던져 놓고 우리는 대개 못 기다립니다. 2~3초 지나면 불안해져서 스스로 답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봅니다." 그러면 질문을 안 한 것과 같습니다. 기다리십시오. 그동안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합니다.
3초나 멈추면 어색하지 않을까요. 그 감각은 진짜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 3초는 10초처럼 느껴지고, 듣는 사람에게는 '한 문단이 끝났구나' 정도입니다. 떨림 편과 같은 구조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감각이 대개 과장됩니다. 그러니 재 보십시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다음 몇 초였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대개 2초쯤입니다.
한 번에 다 바꾸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발표 내내 "어" 소리를 감시하고 있으면 정작 내용을 놓칩니다. 제가 권하는 비율은 평소 하던 대로가 70, 새로 시도하는 것이 30입니다. 처음에는 접속사 뒤 한 곳이면 됩니다. 다음번에는 40이 됩니다.
침묵이 먼저입니다.

톤의 변화는 침묵 다음입니다
침묵이 몸에 붙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목소리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높이와 크기와 속도, 셋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있습니다. 채움말이 계속 나오는 상태에서 톤에 변화를 주면 톤이 실린 채움말이 됩니다. "그래서어~ 음~" 하는 식이라 더 나빠집니다. 조용한 배경이 있어야 강조가 강조로 들립니다.
2,400년쯤 전에 노자가 같은 이야기를 그릇으로 했습니다. 『도덕경』 11장입니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면 그 안이 비어 있어야 그릇으로 쓸 수 있다고요.
느려 보이는 게 걱정되신다면 하나만 확인하십시오. 멈춘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느냐입니다. 시선을 떨구거나 화면을 돌아보면 막힌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기다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3초인데 정반대입니다.
침묵이 먼저입니다.
저를 앞에 세운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글 머리에서 미뤄 둔 이야기입니다. 제 첫 발표 무대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이었습니다.
저는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담임 선생님이 저를 오락반장으로 뽑으셨습니다. 코미디언 백남봉 원맨쇼 테이프를 틈만 나면 들었고, 듣다 보니 흉내를 내게 됐습니다. 그게 선생님 눈에 띈 겁니다. 그렇게 저는 60명 앞에 섰습니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10년쯤 뒤에 저는 군대에 있었습니다. 포병이었고, 몸이 약해서 훈련에서 자주 뒤처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목소리가 큰 편입니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없어서 늘 작게 말했습니다. 군대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아 아주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일병 즈음에 사단 웅변대회에 늘 나가던 고참이 제대를 하게 됐고, 새 대표를 두고 논의가 있었습니다. 다들 '내가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그 고참이 말했습니다.
"저 친구 시키면 되겠네. 목소리가 제일 크잖아."
두 번 다 제가 나선 것이 아니라 누군가 세워 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 제가 쓴 것은 원래 있던 것이었습니다. 큰 목소리 하나, 남을 유심히 보고 흉내 내는 버릇 하나. 침묵도 그런 쪽입니다. 이미 생기는 공백을 그냥 두는 것이 전부입니다. 말하기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기술이 침묵입니다.
당신의 채움말은 어느 쪽입니까
소리형. "어", "음"처럼 소리로 나오는 쪽입니다. 녹음을 들으면 본인도 바로 압니다. 가장 고치기 쉽습니다.
단어형. "이제", "사실", "약간"처럼 단어 형태를 한 쪽입니다. 가장 흔하고 가장 안 들립니다. 앞의 CTO가 여기입니다.
즉답형. 질문을 던져 놓고 스스로 답하시는 분입니다. 그 답하는 문장이 채움말 노릇을 합니다.
이어 말하기형. 채움말이 아예 안 들리는 분입니다. 한 문장이 끝나기 전에 다음 문장이 붙어서 끝까지 갑니다. 그 힘을 덜어 낼 일이 아니라 끊을 곳 하나만 정하면 됩니다.
넷 다 뿌리는 같습니다. 공백을 못 견디는 습관입니다. 질문은 하나입니다.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물으면, 그 사람은 어떤 단어를 말할 것 같습니까.
30초 실천
우선은 짧은 문장 두 개를 소리 내어 말해 보십시오. 그리고 두 문장 사이에 하나 둘 셋을 세십시오. 소리 내지 말고 속으로 세십시오.
딱 한 번이면 됩니다. 그 3초가 어떤 느낌인지 몸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오늘의 전부입니다. 셋까지 길면 둘까지만 세셔도 됩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그것을 접속사 뒤에서 딱 한 번 쓰십시오.

왜 멈춘 사람이 더 잘했다고 하는가
워크샵의 그 두 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본인 귀에는 소리로 채우지 못한 공백만 들렸습니다.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 공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없는 소리는 안 들리니까요.
대신 그 공백에 다른 것이 들어옵니다. 방금 들은 문장을 소화할 시간,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짧은 긴장, 서두르지 않는다는 인상입니다.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 말은 발표자의 감각으로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듣는 사람의 감각으로는 오히려 잘 전달된 발표였습니다. 발표의 성패를 평가하는 쪽은 듣는 쪽입니다.
침묵을 익히고 나면 다음 문제가 남습니다. 멈춰 있는 동안 어디를 보고,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적겠습니다.
침묵은 말이 끊긴 상태가 아닙니다. 아직 내 말이 안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침묵이 먼저입니다.
이 글은 전자책 『다 말하지 마세요』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는 스마트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smartstore.naver.com/petercomm/products/13788987324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