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넘기기 전에 말합니다. 한 장 한 장은 다 이해되는데 전체를 모르겠다는 느낌은 설명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화면이 바뀌는 1초가 비어 있어서 생깁니다. 그 1초를 채우는 말은 새로 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발표 안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남의 발표를 듣다가 이런 순간을 겪어 보셨을 겁니다. 10분쯤 지났습니다. 슬라이드는 계속 넘어갑니다. 한 장 한 장은 다 이해가 됩니다. 그래프도 읽히고 숫자도 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걸 왜 보고 있는 거지?"
각 장은 알겠는데 전체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집중해 보려고 하는데 이미 두 장이 지나갔습니다. 그때부터는 그냥 봅니다. 발표자는 이 순간을 모릅니다. 화면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이 정확히 언제 오는지는 글 끝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같은 자료로 두 번 녹화해 본 이야기도 뒤에서 하겠습니다.

발표자 쪽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장을 넘기면서 대개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다음은 개선 방안입니다." "이건 시장 데이터입니다." "자, 그러면 다음 장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화면에 이미 적혀 있는 것을 말로 반복할 뿐입니다.
저는 20년 넘게 프레젠테이션을 코칭했습니다. 고객사는 140여 곳이고 그중 32개사가 포춘 500대 기업입니다. 연결어 이야기라고 하면 말솜씨 쪽으로 가겠구나 싶으실 겁니다. 아닙니다. 새로 지어낼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 1초를 채우는 문장 하나를 가져가게 됩니다. 절반은 언제 말하느냐, 나머지 절반은 어떤 형태로 말하느냐입니다.
넘기기 전에 말합니다
화면이 바뀌는 순간에는 짧은 공백이 생깁니다. 청중의 눈이 새 화면으로 옮겨 가고, 그것을 읽고, 앞 장과 연결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이 1초쯤 걸립니다. 저는 이 공백을 넘김 공백이라고 부릅니다.
한 장에 하나씩 포인트를 배치하면 장수가 늘고, 넘기는 횟수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한 번에 1초씩, 스무 번이면 20초입니다. 짧아 보이지만 그 20초가 전부 청중이 혼자 남겨진 시간입니다.
연결어는 장을 넘기기 직전에 말합니다. 늦어도 넘기면서 말합니다. 넘긴 다음에 말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넘기고 나서 말하면 청중은 이미 새 화면을 읽은 뒤입니다. 스스로 연결을 시도했고, 실패했고, 그다음에 설명을 듣습니다. 넘기기 전에 말하면 순서가 반대입니다. 청중이 다음을 예상하고, 화면이 바뀌고, 예상한 것이 나옵니다.
예상한 것이 나오면 사람은 이해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도 같은 기대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넘기기 전에 말합니다. 이것이 절반입니다.

질문형 연결어가 가장 잘 통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형태입니다. 가장 잘 통하는 것은 질문입니다. 질문을 들으면 사람은 자동으로 답을 찾기 시작합니다. 질문 하나를 던져 놓고 화면을 넘기면 청중은 답을 찾으러 새 화면에 들어옵니다. 읽는 게 아니라 찾는 겁니다.
설명형 연결어. "다음은 원인 분석입니다." (넘김)
질문형 연결어. "그러면 왜 하필 첫 주에 몰렸을까요." (넘김)
같은 슬라이드인데 전달되는 방식이 다릅니다. 자주 쓰는 형태는 다섯 가지입니다. 외우실 필요는 없고 하나만 입에 붙이셔도 됩니다.
- 질문형 — "그러면 왜 그럴까요."
- 예고형 — "여기부터가 오늘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 대비형 — "지금까지는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제 아닌 쪽을 보겠습니다."
- 되짚기형 — "아까 첫 주에 몰린다고 말씀드렸죠. 그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 숫자형 — "세 가지 중에 두 번째입니다."
마지막 숫자형은 청중이 지금 어디쯤 왔는지를 알려 줍니다. 사람은 끝이 안 보이면 집중을 놓습니다.
실제로 붙여 놓으면 어떻게 들리는지 보시겠습니다. 이탈률 자료를 세 장으로 쪼갠 발표입니다. 슬라이드 내용은 빼고 입 밖으로 나가는 말만 적어 보겠습니다.
(1장 띄운 채) "3분기에 이탈이 5.1에서 8.2로 뛰었습니다. 두 배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넘길 폭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게 전 구간에서 고르게 오른 게 아닙니다." (넘김)
(2장) "보시는 대로 첫 주 하나에 몰려 있습니다. 가입하고 7일 안에 나간 사람이 62퍼센트입니다. 그럼 첫 주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넘김)
(3장) "물어봤더니 41퍼센트가 같은 답을 했습니다. 초기 설정이 복잡하다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원인이었고, 이제 저희가 뭘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넘김)
굵게 표시한 부분이 전부 다음 장으로 건너가는 다리 노릇을 합니다. 셋 다 화면이 바뀌기 전에 나옵니다. 그리고 이 문장들만 이어 붙여도 그 자체로 말이 됩니다.
고르게 오른 게 아니다 → 첫 주에 무슨 일이 있나 → 원인은 여기까지고 이제 조치다
연결어만 뽑아서 읽었는데 발표 전체의 뼈대가 나옵니다. 잘 만들어진 발표의 신호입니다. 반대로 연결어만 뽑았을 때 말이 안 되면, 그 발표는 아직 낱장의 모음입니다. 넘기기 전에 말합니다.
연결어는 체인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연결어를 매번 지어내야 할까요. 아닙니다. 인과로 꿰어 둔 체인이 있다면 연결어는 그 체인의 마디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느리다 → 이래서 그렇다 → 이렇게 고쳤다 → 이렇게 됐다 → 이게 남았다
한 마디에서 다음 마디로 넘어갈 때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소리 내어 말하면 그것이 연결어입니다. "그런데 원인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잡을까요." "다만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새로 지어낸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체인에 이미 있던 이유를 밖으로 꺼냈을 뿐입니다. 반대로 연결어가 안 만들어진다면, 그건 말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그 두 장 사이에 인과가 없다는 신호입니다. 순서를 다시 봐야 합니다.
결론을 뒤에 두고 말하는 분들이 연결어를 가장 자주 빠뜨립니다. 근거를 차곡차곡 쌓아 결론으로 가니 본인 머릿속에서는 그 순서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듣는 사람은 결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근거를 듣습니다. 그 근거가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세 번째 근거쯤에서 길을 잃습니다. 최소한 이 한마디는 앞에 두십시오.
"결론은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세 가지만 보시겠습니다."
이 한 문장이 있으면 청중이 기다려 줍니다. 없으면 기다릴 이유를 모릅니다.
장면을 잇는 한 수가 얼마나 센지는 영화 쪽에서 먼저 증명됐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전환이 있습니다. 유인원이 하늘로 던진 뼈가 회전하는 화면에서 다음 컷은 우주를 나는 우주선입니다. 뼈와 우주선의 모양이 겹쳐서 300만 년이 한 번에 넘어갑니다. 이런 전환을 매치컷이라고 부릅니다. 발표에서 그 모양을 만드는 것이 말입니다.

말이 늘어질까 걱정하실 만합니다.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연결어가 없으면 새 장에 들어가서 상황 설명부터 다시 합니다. "이 그래프는 3분기 이탈률을 시점별로 나눈 것이고요, 여기 보시면…" 미리 심어 두면 그 설명이 필요 없고 바로 본론으로 갑니다. 연결어 한 문장이 설명 세 문장을 아낍니다. 스무 장이면 60문장입니다.
같은 자료로 두 번 녹화해 보면
워크샵에서 같은 자료로 두 번 녹화해 보는 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연결어 없이, 두 번째는 연결어만 얹어서 합니다. 슬라이드는 한 장도 안 바뀌었습니다.
두 번째 영상을 본 동료들이 이 말을 합니다.
"이번엔 어디로 가는지 알겠다."
발표자 본인도 두 번째가 짧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시간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설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들린다는 평을 받았던 기술 영업 전문가도 여기였습니다. 성능 수치에서 설치 조건으로 건너갈 때 그 이유를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듣는 사람에게는 두 이야기가 그냥 나란히 놓인 것으로 들렸습니다.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연결어 없이 스무 장을 넘기면 청중은 각자 스무 번 연결을 시도합니다. 몇 번 실패하면 시도를 그만둡니다. 그때부터는 멍하니 화면을 봅니다. 발표는 끝까지 진행되고 아무 사고도 없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질문이 없습니다. 질문이 없는 것을 다들 잘 끝났다는 뜻으로 오해합니다. 대개는 반대입니다.
당신의 연결어는 어느 쪽입니까
"다음은 개선 방안입니다"로 넘기셨던 분. 앞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한 그 세 마디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타이밍은 이미 맞습니다. 넘기기 직전에 말하고 계시니까요. 형태만 질문으로 바꾸시면 됩니다.
넘기고 나서 설명을 시작하시는 분. 형태는 좋은데 타이밍이 늦습니다. 같은 말을 한 박자만 앞으로 당기십시오.
연결어를 아예 안 쓰시는 분. 체인이 있다면 연결어는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았을 뿐입니다.
셋 다 새로 배울 것이 없습니다. 타이밍과 형태만 맞추면 됩니다.
질문은 하나입니다. 지난 발표에서 장을 넘기기 직전에 한 말을 하나라도 기억하십니까.
30초 실천
우선은 다음 발표 자료에서 아무 데나 이웃한 두 장을 고르십시오. 3번 장과 4번 장 같은 것이면 됩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만들어 보십시오.
"3번에서 4번으로 넘어가는 이유는 ______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만들어지면 질문형으로 바꿔서 넘기기 직전에 말하십시오. 질문형이 안 만들어지면 "그런데"만 앞에 붙이셔도 됩니다. 그 한 단어가 청중을 다음 장으로 데려갑니다. 문장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두 장은 순서가 잘못된 겁니다. 오늘은 그것을 알게 된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순간은 다섯 번째 장 언저리에 옵니다
글 머리에서 약속한 대목입니다. "지금 이걸 왜 보고 있는 거지?"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청중은 이미 발표에서 나간 상태입니다.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기가 어렵습니다.
그 순간은 대개 넘김 공백이 대여섯 번 쌓였을 때 옵니다. 다섯 번째 장 언저리입니다. 발표자는 이제 막 몸이 풀렸다고 느끼는 때이고, 청중의 집중력은 조용히 퇴장하는 때입니다.
막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다음 장이 왜 오는지를 미리 말해 주는 것입니다. 거창한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문장 하나면 됩니다. 그 문장 하나가 있고 없고가 스무 번 쌓이면 전혀 다른 발표가 됩니다.
슬라이드는 넘기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는 것입니다. 다리를 놓아 주십시오.
넘기기 전에 말합니다.
이 글은 전자책 『다 말하지 마세요』의 연재입니다. 전체 원고는 스마트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smartstore.naver.com/petercomm/products/13788987324
한창훈 · 피터의 커뮤니케이션